야고보서 제1강 / 야고보서 1:1-18(12) / 시험을 참는 자 / 찬송가: 343
<본문 말씀>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간략한 서론>
* 야고보서: 저자는 주 예수님의 형제인 장로 야고보(행 15:13-21; 21:18)이다. 그는 의인 야고보로 불렸던 경건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기독교 1세대(B.C 44-62)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주요 장로로서 섬겼다. 신약성경의 분류상 공동서신에 속한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삶은 함께 하는 것임을 이해시키기 위해 이 서신을 썼다. 이를 위해 신앙생활 중에 부딪치는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해 구약성경과 예수님의 가르치심(특히 산상수훈)에 기초해 실천적인 지침을 말씀한다. 머리의 신앙이 아닌 가슴과 삶의 신앙으로 안내하는 성경이다.
* 1강(1:1-18) 내용은 예수님을 믿은 것 때문에, 당시 사회에서 여러 가지 역경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그런 역경이 주는 유익이 무엇이며, 그런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서 역경을 참는 자, 견디어 내는 자가 되도록 권면한다. 그런 한편으로 역경을 가리키는 시험이라는 단어가 유혹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유혹에 속아 죄에 빠지지는 않도록 주의를 주기도 한다. 여기에 생명과 사망이 달려 있음을 상기시킨다.
1.1. 야고보서는 누가 누구에게 쓴 서신입니까(1)? 1.2.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왜 그것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까(2-3)? 1.3. 이를 통해 인내가 그들을 어떤 자들로 빚어가도록 해야 합니까(4)?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쓴다.
- 야고보는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한다. ‘주’는 ‘구약성경의 ‘여호와’를 70인역과 신약성경에서 번역한 단어(퀴리오스; 주인, 지배자, 왕)로서, 예수님에 대해서도 쓰이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쓰인다(1:7, 마 4:7; 22:44). 예수님에 대해서 쓰일 때 대체적으로 왕(세상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만왕의 왕)의 의미로 쓰인다. 야고보는 인간적으로는 예수님의 동생이다.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는 다른 형제이다. 그러나 자신을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고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섬기는 종일뿐임을 밝힌다.
-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 이스라엘 밖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디아스포라는 일반적으로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과 앗수르, 바벨론, 바사, 헬라 제국 치하에 포로로 끌려갔던 조상들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1.2.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한다. 이는 그들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을 그들이 알기 때문이다.
- 시험과 시련? 시험은 동사 '페이라조'에서 유래한 명사 '페이라스모스'로서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시도(attempt), 시험(test), 외적 시련(trial), 유혹(temptation) 등이다. 성도들이 여러 가지 외적 시련을 만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하고자 한다. 3절의 시련(도키미온)은 롬 5:4의 연단 '도키메'(시험을 거쳐 나온 자질)에서 유래한 말로, 그런 연단을 위한 과정(정제, 순도나 강도를 높이는 것)을 말한다.
- 시험을 당할 때, 그때마다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한다. 여기는 것은 적극적인 생각의 방향을 말한다. 그때마다 그런 역경을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지게 하실 것을 믿고 신뢰하고 감사하는 상태에 있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 성도에게 그런 시험들은, 믿음의 시련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시련은 믿음을 배우게 하고, 믿음이 더 순수해지고, 더 강해지게 하는 그런 연단의 과정이라는 뜻이다. 이런 연단의 과정이 인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 인내는 견고히 서는 것, 확고부동하게 진리에 붙어 있는 것을 말한다. 역경을 겪으면서 믿음의 시련을 거친 사람은 마치 고된 훈련을 거친 후 강력한 전투력을 갖춘 특수부대병사와 같이 된다. 혹독한 전투상황에서도 확고부동하게 임무를 수행해낸다. 야고보는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 역경을 만나지만, 그때마다 전적으로 기쁘게 여기는 성도가 될 수 있어야 된다. 그것은 인내라는 어떤 임무상황에서도 견고히 서서 확고부동하게 맡겨진 일을 해낼 수 있는 굳센 믿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오늘날 운동선수들이 받는 여러 가지 고된 훈련과 같은 것이다. 공포의 체력훈련, 전술훈련 등.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하는데, 이는 인내가 그들을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것은? 시험을 당할 때 기뻐하는 것을 한두 번 하다가 그만두면 - 믿음을 연단하지 않으면, 그러면 인내가 안 만들어진다. 강한 전투력을 만들 수 없다. 인내를 성숙하게, 수준 높게, 끈기 있게 계속 만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 성도들이 그런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하는 것은 왜인가? 인내가 하는 역할 때문이다. 인내가 그들을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기 때문이다. 인내가 강한 믿음의 전투력과 같이 영적 전쟁터에서 그들을 어떤 상황에서도 영적 전쟁을 감당할 수 있도록 부족함이 없게 하기 때문이다. U.F.C 경기 하이라이트를 종종 보곤 하는데, 경기에 나설 때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선수가 되지 못하면, 그보다 더 잘 준비된 상대에게 비참하게 깨어지고 패배하게 된다. 에베소서 4:13-14에서 범사에 그에게 이르기까지 자람으로써 어린 아이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할 때와 같은 의미다.
- 역경을 통한 믿음의 시련, 믿음의 연단이 없는 사람은 굳게 선 신자가 되지 못한다. 어느 때에 보면 어린 아이처럼 넘어지거나 실족하게 된다.
-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여러 가지로 만나는 역경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고, 믿음의 시련으로 받아들이고, 인내를 만들어야 한다.
2.1. 그리스도인들은 시련 속에서 지혜가 부족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5)? 2.2. 이때 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까(6-8)?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2.1.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할 때는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 지혜가 부족하다? 지혜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는 사건이나 사물의 핵심을 꿰뚫는 힘을 지혜라고 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지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한다면, '올바른 행동을 위해 필요한 마음과 정신의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혜가 있어야, 역경을 만날 때마다, 믿음의 시련으로써 받아들이고 감당하고, 인내를 키워나갈 수 있다. 지혜가 부족하면, 역경을 만날 때 이렇게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믿음으로 반응하기보다 인간적이 된다. 힘들어 하고, 드러눕고, 도피하고(딴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사람을 쳐다보며 도움을 바라며 원망과 불신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 역경을 만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결국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심이시기에, 역경을 믿음의 시련으로서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지혜도 주신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란 받을 자격이 있든 없든 주신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 자신이 자격이 있거나 없거나는 하나님께는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 때문에 기도할 수 있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꾸짖지 아니하시고 주신다.
- 그런 지혜의 부족함이란 그 사람 자신의 능력과 힘 밖의 문제이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구하고 받아야 된다.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이 극복해야 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구하고 받아야 한다.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2.2. 이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고,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런 사람은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을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 이렇게 구할 때,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된다. 믿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을 때(마 11:22)의 그런 믿음이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앞의 5절에서 말한 것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 앞에서 말한 그런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다. 바다의 물결을 지켜보면 순간순간 바람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소위 순간순간 이랬다 저랬다 변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앞에서 말한 역경과 믿음의 시련과 인내가 없는 사람을 말한다.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실력도 없는 사람이 경기에 출전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우왕좌왕하는 수준의 사람이다. 그런 선수는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도 무엇을 주실 수 없는 사람이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고자 하는 자세로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나가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3.1. 또한 낮은 형제는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까(9)? 3.2. 이는 부한 자가 어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까(10-11)?
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3.1.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해야 한다.
* 여기서는 가난한 성도들을 격려하려고 한다.
- 낮은 형제?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사회적으로 비천한 위치나, 마음이 겸손한 태도에 대해 쓰이는 단어이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항상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고, 10절에서 부한 자와 대조하는 것을 볼 때, 겸손보다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성도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 자랑하라? 자랑하는 것은 3인칭 명령으로 기뻐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비천한 처지를 자랑할 수 있고, 자랑해야만 한다고 권한다.
- ‘높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 높아질 것을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가난한 자를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게 위해 택하셨기 때문이다(2:5).
- 이는 결국,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한 권면의 연장선에서 권하는 말씀이다. 가난이라는 역경을 믿음의 시련으로 여기며 감당하고 인내를 이루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 부요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된다. 고후 8:2의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이 그러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하나님 나라에서 높이실 것이다. 그런 높음을 바라보며 기뻐해야 한다고 하신다.
1: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3.2. 이는 부한 자가 낮아지며,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듯이,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10절은 이해가 쉽지 않다. 헬라어 원문에는 자랑한다는 말이 없다. 한글 성경은 10a를 9절의 ‘자랑하라’(카우카스도, 대문자로 9절 자체를 강조한다)에 연결하여 번역하였는데, 그 보다는 10b에 ‘지나간다’에 연결하여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전체적인 맥락이 가난한 성도들의 영적 투쟁을 격려하는 데 초점이 있고, 이를 염두에 두고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서 낮아지며 그 재산과 함께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갈 것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는 것을 통해, 심판과 함께 인생의 덧없음을 상기한다. 이는 욥기 14:2, 사 40:6-8 등의 구약에서 인용한 것이다.
-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이면서 부자는 어떻게 생각해 나가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부의 덧없음을 깨달음으로써, 자기의 정체성을 부에서 찾거나, 부를 이용해 자신들을 다른 사람보다 높이려 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부가 자신을 영적으로 위태롭게 만들 수 있음을 알고, 그들의 자랑도 가난한 자의 그것과 다를 수 없음을 아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고전 7:31처럼 생각함으로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생각해 나가야 된다.
4.1. 시험을 참는 자는 왜 복이 있습니까(12)? (참조. 롬 8:28) 4.2. 시험을 받을 때 왜 하나님께 책임을 돌려서는 안됩니까(13)? 4.3.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이유와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14-15)?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4.1.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 12절의 첫 단어는 산상수훈의 팔복에서와 같은 ‘복이 있나니’(마카리오스, 역시 대문자로 강조)로 시작된다. 성경에서 복되다(blessed)는 것과 행복하다(happy)는 단어와 어떻게 다른가? 후자는 대개 현재의 감정 상태를 가리키지만, 전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상태를 말한다. 창 1:28이 말하듯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관계의 상태에 있는 것이 복이 있다는 의미다. 죄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이 저주하시는(반드시 죽으리라 = 죽고 죽으리라; 창 2:17) 상태에 있다.
- 시험? 여러 가지 역경들을 말하고, 앞에서는 가난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이런 시험을 참는 자가 왜 복이 있는가?
- 참는? 그런 역경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견디고, 버티는 것을 말한다. 12b의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고자’ 참는 것을 말한다. 이런 자들은 시험을 참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시련을 견디어 낸 자로서 인정을 받는다. 이들은 눅 8:15에서 말하듯이,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참된 성도들로 인정을 받는 것을 뜻한다.
- 이런 자는 복이 있는 자이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관계의 상태에 있는 자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은혜로 시험을 참는 자이다. 이런 자는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 곧 역경조차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 생명의 면류관은? 생명인 면류관을 말한다. 그것은 2:5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으로 받는 것이고, 부활과 영생을 얻는 것이다.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4.2.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 시험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이기에, 문맥에서 구분해야 한다. 13절에서는 시험이란 단어의 또 다른 의미인 유혹(temptation)을 다룬다. 성도들의 삶에 시험(외적 역경)을 허락하신다고 해서, 이 말의 다른 의미인 죄짓게 하는 유혹을 하시는 분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 두고자 한다. 하나님이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않으신다는 말을 통해, 여기서 시험은 유혹의 의미라는 것을 문맥상에 밝힌다.
-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 여기서는 죄를 짓게 하려는 유혹이 있을 때를 말한다. 창 3장이 예가 된다. 뱀이 여자가 죄를 짓도록, 그래서 아담까지 죄를 짓게 하고자 유혹했고, 여자와 아담이 실패했다.
- 이렇게 어떤 사람의 실패가 있을 때, 죄를 짓게 될 때, 그 실패가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아담이 그렇게 했다. “당신이 나에게 준 여자 그가 ... 창 3:12” 하며 하나님께 책임을 돌렸다.
-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께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통치하실지라도, 여자와 아담의 실패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신자의 삶에 앞에 나오는 시험 곧 역경을 허락하시지만(창 22:1에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듯이), 그렇다고 하나님은 친히 사람이 죄를 짓도록 유혹하시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이 악을 행하도록 유혹하시 않으신다.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친히 악에게 유혹을 받으실 수 없다.
- 죄인이 죄를 짓고 나서 자신의 실패의 궁극적 원인을 하나님에게서 찾고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것은 타락한 본성으로 인한 것이고, 전적으로 자기기만일 뿐이다.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4.3.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때문인데,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게 된다.
- 오직 각 사람이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때문이다.
- 여기서 욕심은 충동, 갈망, 욕망의 뜻을 가진 단어 '에퓌뒤미아'라는 단어를 쓴다. 이는 악을 행하고자 하는 욕망, 스스로 높아지고 개인적인 만족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 옳지 않더라도 안전하고자 하는 욕망을 말한다.
- 미혹되는 것은 당겨져서 미끼에 걸리는 것을 묘사하는 말이다. 욕망에 끌려 미끼(낚시)에 걸린다.
- 이것은 마치 욕심이 잉태하는 것과 같다. 욕심이 미끼라는 거짓과 만나서 수정을 하는 셈이다. 그 결과 죄를 낳게 된다. 그리고 그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 이는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 인내가 성도들을 온전하여 구비하게 하는 것과 대조된다.
* 역경으로서의 시험은 잘 받아들이고 감당하면 생명을 얻지만, 유혹으로서의 시험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데 받아들이면 사망에 이른다.
5.1. 그리스도인들이 속지 말고, 확고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16-17)? (참조. 창 3:4-6) 5.2.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선물의 가장 좋은 예가 무엇입니까(18)? (참조. 요 3:16)
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 창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5.1. 그리스도인들은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시다.
- 속지 말아야 하는 것은, 유혹하는 자가 거짓된 미끼를 가지고 욕심을 자극하며 죄를 짓게 하고, 즉 죄를 낳게 하고 사망을 낳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혹의 근원이 하나님이신 줄 알거나, 온갖 좋은 것이 하나님 외에 다른 근원에서 온다고 생각하다가 속지 말아야 된다. 특히 자기기만에 속지 않아야 된다.
- 속지 않으려면?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임을 알아야 된다. 유혹(마귀가 배후에 있는)은 좋은 것을 빼앗아 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언제나 선하다. 지혜를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
- 빛들의 아버지?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
- 하나님에게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분이시다. 해와 달과는 달리 하나님은 그 성품에서 전혀 불변이시다. 변하지 않으신다. 회전하는 그림자처럼 쉼 없이 변하는 그런 것이 없다.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5.2. 하나님께서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신 것이다.
-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신 것? 첫 열매가 맺히면, 계속해서 많은 열매가 맺힌다.
- 그런데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곧 복음으로 성도들을 낳으셨다. 이는 하나님이 참된 말씀 곧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계속 수 없이 많은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오직 진리의 말씀을 듣고 받는 것이 이런 축복을 받는 길이다.
야고보서 제1강 / 야고보서 1:1-18(12) / 시험을 참는 자 / 찬송가: 343
<본문 말씀>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간략한 서론>
* 야고보서: 저자는 주 예수님의 형제인 장로 야고보(행 15:13-21; 21:18)이다. 그는 의인 야고보로 불렸던 경건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기독교 1세대(B.C 44-62)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주요 장로로서 섬겼다. 신약성경의 분류상 공동서신에 속한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삶은 함께 하는 것임을 이해시키기 위해 이 서신을 썼다. 이를 위해 신앙생활 중에 부딪치는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해 구약성경과 예수님의 가르치심(특히 산상수훈)에 기초해 실천적인 지침을 말씀한다. 머리의 신앙이 아닌 가슴과 삶의 신앙으로 안내하는 성경이다.
* 1강(1:1-18) 내용은 예수님을 믿은 것 때문에, 당시 사회에서 여러 가지 역경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그런 역경이 주는 유익이 무엇이며, 그런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서 역경을 참는 자, 견디어 내는 자가 되도록 권면한다. 그런 한편으로 역경을 가리키는 시험이라는 단어가 유혹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유혹에 속아 죄에 빠지지는 않도록 주의를 주기도 한다. 여기에 생명과 사망이 달려 있음을 상기시킨다.
1.1. 야고보서는 누가 누구에게 쓴 서신입니까(1)? 1.2.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왜 그것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까(2-3)? 1.3. 이를 통해 인내가 그들을 어떤 자들로 빚어가도록 해야 합니까(4)?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쓴다.
- 야고보는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한다. ‘주’는 ‘구약성경의 ‘여호와’를 70인역과 신약성경에서 번역한 단어(퀴리오스; 주인, 지배자, 왕)로서, 예수님에 대해서도 쓰이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쓰인다(1:7, 마 4:7; 22:44). 예수님에 대해서 쓰일 때 대체적으로 왕(세상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만왕의 왕)의 의미로 쓰인다. 야고보는 인간적으로는 예수님의 동생이다.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는 다른 형제이다. 그러나 자신을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고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섬기는 종일뿐임을 밝힌다.
-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 이스라엘 밖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디아스포라는 일반적으로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과 앗수르, 바벨론, 바사, 헬라 제국 치하에 포로로 끌려갔던 조상들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1.2.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한다. 이는 그들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을 그들이 알기 때문이다.
- 시험과 시련? 시험은 동사 '페이라조'에서 유래한 명사 '페이라스모스'로서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시도(attempt), 시험(test), 외적 시련(trial), 유혹(temptation) 등이다. 성도들이 여러 가지 외적 시련을 만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하고자 한다. 3절의 시련(도키미온)은 롬 5:4의 연단 '도키메'(시험을 거쳐 나온 자질)에서 유래한 말로, 그런 연단을 위한 과정(정제, 순도나 강도를 높이는 것)을 말한다.
- 시험을 당할 때, 그때마다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한다. 여기는 것은 적극적인 생각의 방향을 말한다. 그때마다 그런 역경을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지게 하실 것을 믿고 신뢰하고 감사하는 상태에 있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 성도에게 그런 시험들은, 믿음의 시련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시련은 믿음을 배우게 하고, 믿음이 더 순수해지고, 더 강해지게 하는 그런 연단의 과정이라는 뜻이다. 이런 연단의 과정이 인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 인내는 견고히 서는 것, 확고부동하게 진리에 붙어 있는 것을 말한다. 역경을 겪으면서 믿음의 시련을 거친 사람은 마치 고된 훈련을 거친 후 강력한 전투력을 갖춘 특수부대병사와 같이 된다. 혹독한 전투상황에서도 확고부동하게 임무를 수행해낸다. 야고보는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 역경을 만나지만, 그때마다 전적으로 기쁘게 여기는 성도가 될 수 있어야 된다. 그것은 인내라는 어떤 임무상황에서도 견고히 서서 확고부동하게 맡겨진 일을 해낼 수 있는 굳센 믿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오늘날 운동선수들이 받는 여러 가지 고된 훈련과 같은 것이다. 공포의 체력훈련, 전술훈련 등.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하는데, 이는 인내가 그들을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것은? 시험을 당할 때 기뻐하는 것을 한두 번 하다가 그만두면 - 믿음을 연단하지 않으면, 그러면 인내가 안 만들어진다. 강한 전투력을 만들 수 없다. 인내를 성숙하게, 수준 높게, 끈기 있게 계속 만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 성도들이 그런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하는 것은 왜인가? 인내가 하는 역할 때문이다. 인내가 그들을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기 때문이다. 인내가 강한 믿음의 전투력과 같이 영적 전쟁터에서 그들을 어떤 상황에서도 영적 전쟁을 감당할 수 있도록 부족함이 없게 하기 때문이다. U.F.C 경기 하이라이트를 종종 보곤 하는데, 경기에 나설 때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선수가 되지 못하면, 그보다 더 잘 준비된 상대에게 비참하게 깨어지고 패배하게 된다. 에베소서 4:13-14에서 범사에 그에게 이르기까지 자람으로써 어린 아이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할 때와 같은 의미다.
- 역경을 통한 믿음의 시련, 믿음의 연단이 없는 사람은 굳게 선 신자가 되지 못한다. 어느 때에 보면 어린 아이처럼 넘어지거나 실족하게 된다.
-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여러 가지로 만나는 역경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고, 믿음의 시련으로 받아들이고, 인내를 만들어야 한다.
2.1. 그리스도인들은 시련 속에서 지혜가 부족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5)? 2.2. 이때 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까(6-8)?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2.1.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할 때는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 지혜가 부족하다? 지혜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는 사건이나 사물의 핵심을 꿰뚫는 힘을 지혜라고 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지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한다면, '올바른 행동을 위해 필요한 마음과 정신의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혜가 있어야, 역경을 만날 때마다, 믿음의 시련으로써 받아들이고 감당하고, 인내를 키워나갈 수 있다. 지혜가 부족하면, 역경을 만날 때 이렇게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믿음으로 반응하기보다 인간적이 된다. 힘들어 하고, 드러눕고, 도피하고(딴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사람을 쳐다보며 도움을 바라며 원망과 불신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 역경을 만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결국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심이시기에, 역경을 믿음의 시련으로서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지혜도 주신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란 받을 자격이 있든 없든 주신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 자신이 자격이 있거나 없거나는 하나님께는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 때문에 기도할 수 있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꾸짖지 아니하시고 주신다.
- 그런 지혜의 부족함이란 그 사람 자신의 능력과 힘 밖의 문제이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구하고 받아야 된다.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이 극복해야 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구하고 받아야 한다.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2.2. 이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고,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런 사람은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을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 이렇게 구할 때,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된다. 믿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을 때(마 11:22)의 그런 믿음이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앞의 5절에서 말한 것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 앞에서 말한 그런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다. 바다의 물결을 지켜보면 순간순간 바람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소위 순간순간 이랬다 저랬다 변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앞에서 말한 역경과 믿음의 시련과 인내가 없는 사람을 말한다.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실력도 없는 사람이 경기에 출전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우왕좌왕하는 수준의 사람이다. 그런 선수는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도 무엇을 주실 수 없는 사람이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고자 하는 자세로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나가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3.1. 또한 낮은 형제는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까(9)? 3.2. 이는 부한 자가 어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까(10-11)?
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3.1.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해야 한다.
* 여기서는 가난한 성도들을 격려하려고 한다.
- 낮은 형제?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사회적으로 비천한 위치나, 마음이 겸손한 태도에 대해 쓰이는 단어이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항상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고, 10절에서 부한 자와 대조하는 것을 볼 때, 겸손보다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성도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 자랑하라? 자랑하는 것은 3인칭 명령으로 기뻐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비천한 처지를 자랑할 수 있고, 자랑해야만 한다고 권한다.
- ‘높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 높아질 것을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가난한 자를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게 위해 택하셨기 때문이다(2:5).
- 이는 결국,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한 권면의 연장선에서 권하는 말씀이다. 가난이라는 역경을 믿음의 시련으로 여기며 감당하고 인내를 이루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 부요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된다. 고후 8:2의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이 그러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하나님 나라에서 높이실 것이다. 그런 높음을 바라보며 기뻐해야 한다고 하신다.
1: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3.2. 이는 부한 자가 낮아지며,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듯이,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10절은 이해가 쉽지 않다. 헬라어 원문에는 자랑한다는 말이 없다. 한글 성경은 10a를 9절의 ‘자랑하라’(카우카스도, 대문자로 9절 자체를 강조한다)에 연결하여 번역하였는데, 그 보다는 10b에 ‘지나간다’에 연결하여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전체적인 맥락이 가난한 성도들의 영적 투쟁을 격려하는 데 초점이 있고, 이를 염두에 두고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서 낮아지며 그 재산과 함께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갈 것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는 것을 통해, 심판과 함께 인생의 덧없음을 상기한다. 이는 욥기 14:2, 사 40:6-8 등의 구약에서 인용한 것이다.
-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이면서 부자는 어떻게 생각해 나가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부의 덧없음을 깨달음으로써, 자기의 정체성을 부에서 찾거나, 부를 이용해 자신들을 다른 사람보다 높이려 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부가 자신을 영적으로 위태롭게 만들 수 있음을 알고, 그들의 자랑도 가난한 자의 그것과 다를 수 없음을 아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고전 7:31처럼 생각함으로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생각해 나가야 된다.
4.1. 시험을 참는 자는 왜 복이 있습니까(12)? (참조. 롬 8:28) 4.2. 시험을 받을 때 왜 하나님께 책임을 돌려서는 안됩니까(13)? 4.3.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이유와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14-15)?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4.1.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 12절의 첫 단어는 산상수훈의 팔복에서와 같은 ‘복이 있나니’(마카리오스, 역시 대문자로 강조)로 시작된다. 성경에서 복되다(blessed)는 것과 행복하다(happy)는 단어와 어떻게 다른가? 후자는 대개 현재의 감정 상태를 가리키지만, 전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상태를 말한다. 창 1:28이 말하듯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관계의 상태에 있는 것이 복이 있다는 의미다. 죄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이 저주하시는(반드시 죽으리라 = 죽고 죽으리라; 창 2:17) 상태에 있다.
- 시험? 여러 가지 역경들을 말하고, 앞에서는 가난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이런 시험을 참는 자가 왜 복이 있는가?
- 참는? 그런 역경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견디고, 버티는 것을 말한다. 12b의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고자’ 참는 것을 말한다. 이런 자들은 시험을 참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시련을 견디어 낸 자로서 인정을 받는다. 이들은 눅 8:15에서 말하듯이,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참된 성도들로 인정을 받는 것을 뜻한다.
- 이런 자는 복이 있는 자이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관계의 상태에 있는 자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은혜로 시험을 참는 자이다. 이런 자는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 곧 역경조차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 생명의 면류관은? 생명인 면류관을 말한다. 그것은 2:5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으로 받는 것이고, 부활과 영생을 얻는 것이다.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4.2.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 시험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이기에, 문맥에서 구분해야 한다. 13절에서는 시험이란 단어의 또 다른 의미인 유혹(temptation)을 다룬다. 성도들의 삶에 시험(외적 역경)을 허락하신다고 해서, 이 말의 다른 의미인 죄짓게 하는 유혹을 하시는 분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 두고자 한다. 하나님이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않으신다는 말을 통해, 여기서 시험은 유혹의 의미라는 것을 문맥상에 밝힌다.
-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 여기서는 죄를 짓게 하려는 유혹이 있을 때를 말한다. 창 3장이 예가 된다. 뱀이 여자가 죄를 짓도록, 그래서 아담까지 죄를 짓게 하고자 유혹했고, 여자와 아담이 실패했다.
- 이렇게 어떤 사람의 실패가 있을 때, 죄를 짓게 될 때, 그 실패가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아담이 그렇게 했다. “당신이 나에게 준 여자 그가 ... 창 3:12” 하며 하나님께 책임을 돌렸다.
-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께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통치하실지라도, 여자와 아담의 실패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신자의 삶에 앞에 나오는 시험 곧 역경을 허락하시지만(창 22:1에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듯이), 그렇다고 하나님은 친히 사람이 죄를 짓도록 유혹하시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이 악을 행하도록 유혹하시 않으신다.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친히 악에게 유혹을 받으실 수 없다.
- 죄인이 죄를 짓고 나서 자신의 실패의 궁극적 원인을 하나님에게서 찾고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것은 타락한 본성으로 인한 것이고, 전적으로 자기기만일 뿐이다.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4.3.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때문인데,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게 된다.
- 오직 각 사람이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때문이다.
- 여기서 욕심은 충동, 갈망, 욕망의 뜻을 가진 단어 '에퓌뒤미아'라는 단어를 쓴다. 이는 악을 행하고자 하는 욕망, 스스로 높아지고 개인적인 만족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 옳지 않더라도 안전하고자 하는 욕망을 말한다.
- 미혹되는 것은 당겨져서 미끼에 걸리는 것을 묘사하는 말이다. 욕망에 끌려 미끼(낚시)에 걸린다.
- 이것은 마치 욕심이 잉태하는 것과 같다. 욕심이 미끼라는 거짓과 만나서 수정을 하는 셈이다. 그 결과 죄를 낳게 된다. 그리고 그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 이는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 인내가 성도들을 온전하여 구비하게 하는 것과 대조된다.
* 역경으로서의 시험은 잘 받아들이고 감당하면 생명을 얻지만, 유혹으로서의 시험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데 받아들이면 사망에 이른다.
5.1. 그리스도인들이 속지 말고, 확고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16-17)? (참조. 창 3:4-6) 5.2.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선물의 가장 좋은 예가 무엇입니까(18)? (참조. 요 3:16)
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 창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5.1. 그리스도인들은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시다.
- 속지 말아야 하는 것은, 유혹하는 자가 거짓된 미끼를 가지고 욕심을 자극하며 죄를 짓게 하고, 즉 죄를 낳게 하고 사망을 낳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혹의 근원이 하나님이신 줄 알거나, 온갖 좋은 것이 하나님 외에 다른 근원에서 온다고 생각하다가 속지 말아야 된다. 특히 자기기만에 속지 않아야 된다.
- 속지 않으려면?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임을 알아야 된다. 유혹(마귀가 배후에 있는)은 좋은 것을 빼앗아 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언제나 선하다. 지혜를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
- 빛들의 아버지?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
- 하나님에게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분이시다. 해와 달과는 달리 하나님은 그 성품에서 전혀 불변이시다. 변하지 않으신다. 회전하는 그림자처럼 쉼 없이 변하는 그런 것이 없다.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5.2. 하나님께서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신 것이다.
-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신 것? 첫 열매가 맺히면, 계속해서 많은 열매가 맺힌다.
- 그런데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곧 복음으로 성도들을 낳으셨다. 이는 하나님이 참된 말씀 곧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계속 수 없이 많은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오직 진리의 말씀을 듣고 받는 것이 이런 축복을 받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