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_에베소서제5강 에베소서 4:17-32 / 새 사람의 삶으로 변화되는 공동체

에베소서 제5강 / 에베소서 4:17-32(24) / 새 사람의 삶으로 변화되는 공동체 / 찬송가: 찬송가: 289


* 4장 전편에서 교회가 어떻게 부르심을 받은 일(소명)에 합당하게 행할 수 있는가를 말씀하면서,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야 한다고 하였다. 이제 그렇게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말씀해 주신다.

- 옛 사람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 사람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무엇인가? 예수님에게서 배운 대로,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다. 교회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런 교회의 지체로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하며, 이를 위해 기능과 역할을 개발해야 한다. 교회의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라가고,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


<살펴볼 본문: 4장 17-19절>

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4: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본문파악을 위한 질문 1. 

① 사도 바울은 이제부터 에베소의 성도들은 어떻게 행하면 안 된다고 하나요(17-18) ②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③ 사람이 어떻게 할 때 마음이 굳어지게 되나요(19)?


① 17-18. 신자들은 이방인이, 행함 같이, 행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서, 총명이 어두워짐으로, 그 마음의 허망한 것 안에서 행함 같이.

- 그러므로?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해야 하므로, 이것을 말하며 주안에서 증언한다. 증언하는 것은 확언하는, 단언하는 것을 말한다.

- 이것이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이방인이 행함 같이 행하지 말아야 한다. 이전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

- 이방인? 당시 유대인들은 인간을 유대인과 이방인의 두 부류로 나누었다. 크리스천들은 후에 자신들을 제3의 인종으로 말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신자와 비신자와 나누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안에)? 허망은 공허 emptiness, 무익 futility, 무가치 worth lessness 이다.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다. 이방인들이 행하는 것 곧 그들의 삶은 헛되고, 무의미하다.

- 왜 그런가?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고, 총명(마음, 이해력)이 어두워졌고, 그런 가운데 허망한 것 안에서 행하는 삶이다. 죄와 허물로 죽었고, 이해력과 분별력이 없어졌고,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 영원한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을 행할 뿐이기 때문이다.

② 저희 마음이 굳어짐 때문이요,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 때문이다.

- 참고: 18절의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는 이방인이 이러이러하게 행함 같이를 수식하는 말이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의 굳어짐으로 말미암아’는 이방인이 행함 같이 이런 식으로 행하는 이유를 말한다.

- 그렇게 하는 이유는 첫째로, 무지함 때문이다. 둘째는 마음이 굳어짐(완악함) 때문이다.

- 마음이 굳어지는 것은 마음이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게 된다.

③ 19. 사람이 자신을 방임하되, 방탕에, 모든 더러운 행동으로,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욕심 속에 방임할 때이다. (19절은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를 수식한다.)

- 왜 이렇게 마음이 완악해지는가? 이방인들이 자신을 방임했기(맡겼기) 때문이다. 욕심(탐욕, 탐심) 속에서 모든 더러운 행동을 함으로 감각 없는 자가 되고, 방탕(방종, 호색)에 자신을 맡겼기 때문이다.

- 모든 더러운 행동? 부정한, 불결한 행동들이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속에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책망하셨다.

- 탐욕 속에서 모든 더러운 것을 행할 때, 감각 없는 자가 된다. 완전히 무감각해진다. 한 마디로 양심이 없는 사람이 된다. 양심조차도 자기를 괴롭히지 않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

* 이와 같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상태에 대해, 전적 타락(전적 부패, Total Depravity) 상태에 있다고 한다.


<살펴볼 본문: 4장 20-24절>

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본문파악을 위한 질문 2. 

① 왜 성도들은 이방인처럼 행해서는 안 되나요(20)? ② 성도들이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듣고 가르침을 받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요(21-24)? ③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① 20. 성도들은 ‘그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 이런 식으로 배우지 않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을 단순히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훈련을 받은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삶은 이방인의 삶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배운 사람이다. 이런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과 삶의 태도를 갖고 있거나 가져야 한다.

② 21-24. 성도들은 예수님 안에 진리가 있음을 알며, 그에게서 듣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런 성도들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새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 안에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 성도로서의 새로운 삶을 옷을 벗고 입는 것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실제로, 초대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때면 자기 옷을 벗고 세례복을 입고 세례를 받은 것에 기초한 비유다.

- 옛 사람을 벗는다? 성도들은 옛 사람의 삶의 방식(이방인의 삶의 방식)을 버려야 한다.

- 새 사람을 입는다? 성도들은 새 사람의 삶의 방식(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에 기초한, 예수님에게서 듣고 배운 삶의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새 사람을 입는 것은?

③ 옛 사람의 삶의 방식으로 살지 않고,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에게 배운 자인 새 사람의 삶의 방식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 옛 사람이란 예수님을 믿기 전의 우리를 가리킨다. 이 옛 사람이 우리 육체 속에 남아 있다. 죄악된 본성을 말한다. 이것이 우리를 옛 생활로 되돌아가게 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옷 벗듯이 벗어버려야 한다.

-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심령이란 영, 마음의 태도를 말한다. 이것이 계속 새롭게 되어야 한다.

- 의와 진리의 거룩함? 의와 거룩은, 진리 즉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는 진리 안에서 그 근원을 갖는다.

- 성도로서 사는 것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이다. 옷으로 치면 옛날 낡은 옷은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있던 우리는 자꾸 버려야. 집착하면 안된다. 예수 믿기 전에 가지고 있던 나의 모습은 발견될 때마다 자꾸 버려야. 회개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옛사람이 지니고 있던 죄악된 모습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붙드는 것이다.

*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과 옛 사람을 고치려는 투쟁은 어떻게 다른가? 자기 완성적인 투쟁과 복음적인 투쟁의 차이점이다. 자기를 붙들고, 자기를 문제 삼고, 자기를 고치려는 것이 자기완성적인 투쟁, 자기는 옛사람이다. 자기 속에서 아무리 선한 것을 찾아봐야 없다. 그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붙들려고 해야. 십자가의 복음이 가르쳐 주는 신앙투쟁이 이것이다. 실제의 삶 속에서 배워 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자기 자신은 근본적으로 벗어버려야 할 옛사람이고, 옛사람인 나에게서는 건질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런데도 자기에게서 뭔가 건지려고 하니까 문제된다. 벗어버려야 할 뿐이다. 롬 6:12,13절이 이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 진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


<살펴볼 본문: 4장 25-28절>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4: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 4:25-6:20은 4:17-24의 부연설명의 역할을 하는 말씀이다. 4:25-5:2은 성도들의 삶이 무엇과 같은지를 설명한다. 5:3-14에서 빛과 어둠 간의 대조를 통해 생명에서 차단된 것을 묘사한다. 5:15-21은 요약적 결론이고, 5:22-6:9에서 가정율에 의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6:10-20은 악을 대항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결론적인 호소이다.


본문파악을 위한 질문 3. 

성도들은 새 사람의 방식으로 살면서 가장 먼저 무엇을 바꾸어야 하나요(25)? 성도들은 화가 날 때도 결코 어떻게 하지는 말아야 하나요(26-27)? 또한 물질생활의 방식에서는 근본적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요(28)?


① 25. 말 곧 언어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첫 번째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 성도들은 교회(몸, 공동체)의 지체로서, 말이 몸을 파괴하는 것이 되면 안 된다.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참된 것 곧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말해야 한다. 거짓말로 갈등을 조장하고, 신뢰를 무너뜨리고, 하나 됨을 깨고, 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서로에게 진실해야 한다. (태경의 문제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소감으로 이렇게 하고자 한다. 그런데 소감을 안 쓰고 말은 많음으로 결국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었다.)

② 26-27.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지내게 될 때, 갈등이 생기고, 분노의 감정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성도들은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하루를 넘기지는 말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시 4:4(70인역,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의 인용이다. 분노 자체가 죄악시 되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의로운 분노도 있을 수 있다(예수님의 성전에서의 분노와 같은). 그러나 분노가 잔인함이나 증오감을 수반한다면 그것은 이미 죄를 지은 것이 된다. 해가 지도록? 하루가 끝나도록 분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분을 며칠씩 계속 품어서는 안 된다. 분노를 적절히 처리할 줄 알아야 한다. 분노조절장애가 있으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마귀가 틈을 타면, 분열이 생긴다. 교회가 깨지게 만든다.

③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을 해야 된다.

- 자기 손으로 수고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남이 수고한 것으로 살게 된다. 크게 보면 도둑질하여 사는 방식에 포함될 수 있다.

- 성도들은 물질생활에서도, 달라져야 한다. 가난한 자를 구제할 수 있기까지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일해야 한다.

- 구체적으로 도둑으로서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돕기까지 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해야 한다.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도둑질하는 차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도둑질을 넓게 해석한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방식을 생각나게 한다.

- 나태하게 살면서 남의 비용으로 살면 안 된다. 장막생활 하면서 장막비를 안낸다든가 하면 안 된다. 어찌하든지 자기 손으로 수고하고, 남을 구제할 것이 있기까지 해야 한다.

* 새 사람의 삶의 방식에 대해: 말의 복음화, 분노의 적절한 처리, 자립자활구제의 삶 세 가지를 먼저 말한다. 말로서 공동체를 세우고, 분노로서 공동체를 깨지 않고, 물질생활에서 은혜를 끼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살펴볼 본문 4장 29-32절>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본문파악을 위한 질문 4. 

① 성도들은 왜 모든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선한 말을 해야 하나요(29-30)? ② 성도들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하는 것을 버려야 하나요(31)? ③ 성도들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며, 어떻게 하면서 이렇게 해 나가야 하나요(32)?


① 29-30. 성도들은 먼저 말이 바뀌어야 한다. 모든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아야 한다. 오직 선한 말을 하여 덕을 세워야 한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성도들은 이런 말의 문제에서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 더러운 말? 험담, 비방의 말, 무미건조하고 무익한 말, 조잡한 말, 이런 말들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병 들인다.

- 선한 말?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이는 말, 좋은 말, 참된 말이다. 이런 말을 해서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쳐야 한다.

-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안에서 구원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도가 범죄하는 것은 성령을 근심하게(고통스럽게, 괴롭게) 하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 구원의 날까지 보증으로 우리에게 주어져 계시는데, 성도라고 하면서 말이 구원 받지 못한 사람과 같으면 성령을 실망시키고, 근심하게 하게 된다.

② 31. 성도들은 다른 사람을 향한 모든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하는 것은 모든 악의와 함께 버려야 한다.

- 성도들 사이에서 말에서만이 아니라, 마음을 먹는 것이나, 행하는 것에서, 악한 것은 다 버려야 한다.

- 모든 악독? bitterness. 남들을 쓰라리게 하는 쓴 맛, 분노, 원망, 난폭함, 잔인함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 노함? 예수님의 가르침에 분노하듯이, 격렬한 감정의 폭발이나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 등을 뜻했다.

- 분냄? 노함과 비슷한데, 예수님께서 불신, 교만 등에 분노하신 것 등을 뜻했다.

- 떠드는 것? 외침이나 부르짖음을 가리킨다. 냉정함을 잃고서 상대방에게 큰소리로 욕설을 퍼붓는 자의 격렬한 감정 폭발의 상태를 말한다.

- 비방하는 것? 중상하고, 모독하는 것을 말한다.

- 모든 악의? 모든 악을 다 말한다.

③ 32. 성도들은 서로 친절(인자)한 자가 되고, 서로 불쌍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심과 같이 서로 용서하면서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다른 길은 없다.

-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는? 형제의 괴로움을 자신의 것처럼 생각하고 함께 고통을 나눔으로써 서로의 지체됨을 확인하는 삶의 자세를 말한다.

- 서로 용서? 신자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덕목 중 하나이다. 남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그 역시 사망의 죄로부터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용서해야 한다.

- 성도들은 지체된 다른 동역자들에 대해서 이런 자세로 대해야 된다. 악감정은 다 버리고, 인자로,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며 대해야 한다. 몸을 비유로 한다면, 항상 서로를 우리 몸의 지체들이 서로 영접하듯이, 위하듯이, 그렇게 해야 한다.

-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생각함으로, 예수님에게 배운 대로, 거룩한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고자 함으로, 이렇게 할 수 있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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