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제2강 / 교회의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 / 에베소서 2:1-22(요절 19) (①1-10 / ②11-22) / 찬송가 403, 351
* 본문은 사람의 두 가지 절망적인 상태에 대해 말하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한 가지는 1-10절의 허물과 죄 아래 갇힌 것이고, 또 한 가지는 11-18절의 분열과 반목 속에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이 하신 일은 이런 사람을 구원하시고, 다시 연합하게 하신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승전의 기념비로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교회를 하나님의 거할 처소 곧 성전으로 지어나가신다.
- 이를 통해 교회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하나님 중심의 교회론이라고 할 수 있다.
* 1장에서는 몸에 비유해 예수님이 머리이신 공동체임을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그 뜻을 이루는 곳이어야 한다.
- 2장에서는 성전건물에 비유해, 예수님을 모퉁잇돌로 하는 영적인 성전임을 말씀하신다. 이러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곧 성전이 되는 데 있다. 이런 영적 성전인 교회로서 교회는 아직도 건축 중에 있다. 온 세상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중에 있는 것이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 세상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이 성전에 참여하여 지어져 간다. 그 완성된 모습은 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성이 상징하는 것이다.
* 영적 성전으로서의 교회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 한 교회는, 한 특수한 부분으로 존재하지만, 본질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영적 성전이 되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다. 교회의 모든 사람과 모든 모임, 모든 사역은 철저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속량 받은 것이 기초가 되고, 예수님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은 안 된다.
- 교회는 무엇을 드러내는 곳이어야 하는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승리의 기념비로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광을 드러내는 곳이 되어야 한다.
<살펴볼 본문 2:1-6>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이는 원래는 없고, 5절에 함께 살리셨다로 연결된다.)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본문파악을 위한 질문 1.
① 에베소 성도들은 과거 어떤 상태에 있었으며, 그때에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요(1-2)? ② 우리도 전에는 어떠했나요(3)? ③ 그런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그들과 우리를 어떻게 하셨나요(4-6)?
* 먼저 1-5절의 문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너희의 허물들과 죄들로 죽었던 너희를 이라고 한 후, 일단 앞의 허물과 죄들에 관련해서 좀 더 말한다. 너희가 그(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행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때에 이 세상 풍속을 따라 허물과 죄를 행한 것이며, 그것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지금 역사하는 영의, 공중의 권세의, 통치자를 따라 행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다 그(죄들) 가운데서 지냈다. 전에는 우리도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면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다. 그런 우리는 본질상 다른 이들과 같이 진노의 자녀들이었다. 그런데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그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서였다. 1-7절까지가 원문은 한 문장이다.
① 1-2절.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다. 그때에 그들은 죄 가운데서 살았다. 말하자면, 이 세상 풍속을 따라 죄 가운데서 살았고,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지금 역사하는 영인 공중의 권세의 통치자를 따라 죄 가운데서 살았다.
- 허물과 죄? 허물은 곁에 떨어진, 이탈한 것을 말한다. 죄는 목표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같은 개념을 표현하는 다른 말로 보면 된다. 중언법이라고 한다.
- 죽었다? 예수님과 함께 살리셨다고 할 때,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창 1-3장을 기초로 하면, 죄로 인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생명의 능력, 1:28)의 공급이 중단된 상태에 있는 사람, 하나님이 없는 사람의 상태로서,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죽음이 독재자로 지배한다. 현재의 삶에서든, 무덤에서든.
- 이 세상 풍속을 따라 죄 가운데 살았다? 살다는 걷다를 말한다. 삶의 방식을 말한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걸어야 하는데(신 5:33, 시 1:1), 현재의 세상적인 시대(age of this world), 하나님을 배제한 시대를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 불순종의 아들들?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살지 않는 사람들이다. 불신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들 중에서도 이론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실천적으로는 무신론자들이 있을 수 있다_류호준 교수)
- 그들 가운데서 지금 역사하는 영인 ((공중의 권세의) 통치자)를 따라, 죄 가운데서 살았다? 공중의 권세의 통치자는 사단을 말한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베드로),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살지 않을 때(유다), 사탄이(그 세력을 통해) 그들 가운데 역사한다. 영향력을 미친다. 불순종을 야기한다.
* 참고로, 성도와 비신자와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하나님이 이끄셔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를 사단이 끊어놓을 수는 없다(롬 8:39).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 예수님 안에서(예수님을 통해서) 깨우쳐 주시고, 책망하시고, 연단하시고, 이끄신다. 그러나 후자는 죄 가운데 살며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② 3절. 마찬가지로 전에는 우리도 다 죄 가운데서 살았다. 우리도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았다. 이런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
- 우리도 다 죄 가운데서 살았다? 수신자들과 동질감을 만들고자 말한다. 구원 받기 전에는 우리도 그랬다. 유대교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지 못했다. 실제로는 어떻게 살았는가?
-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았다? 육체는 사르크스, 죄악된 본성을 가리카는 단어다. 그런 본성의 욕심 곧 죄악 된 욕심을 따라 살았다. 그것은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없었을 때, 우리의 육체와 마음이 간절히 원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길이 아닌 것)을 하며 살게 된다.
- 본질상 진노의 자녀? 진노의 자녀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관용구다. 본질상? 겉으로는 유대인으로 하나님의 백성처럼 보였지만 내용상으론. 진노는 현재(롬 1:18)와 장래(롬 5:9)의 진노(곧 형벌) 모두를 말한다.
③ 4-6절. 그런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의 큰 사랑 때문에, (1,2절의 그런 너희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이는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함께 일으키셨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함께 앉히셨다.
- 너희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하나님께서 그의 풍성한 긍휼과 큰 사랑으로 하신 일이 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일이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것을 말한다. 사랑은 아가페로, 애정, 호의, 자비심을 말한다.
-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만이 필요하다. 똑 같이 가치 없는, 대등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이에 기초로 서로에 대해 지위고하, 남녀노소, 빈부귀천과 상관없이 존경과 호의로 대해야 한다.
-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너희와 우리를 함께 살리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실 때, 하나님은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함께 살리셨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는 속량하시고, 부활의 새 생명을 함께 다시 공급해 주셨다. 이런 자들을 두고, 복 있는, 복 아래 있는 자들이라고 한다. 산상수훈은 이런 상태에 있음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말씀이다.
* 이는 죽음과 진노에서 구원을 받은 것인데,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 이렇게 살리신 것은,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실 때 함께 일으키신 것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함께 앉히신 것이다.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신 존재다. 현실적으로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 1장 전반부의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을,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던 자였는가를 기초로, 죽음과 진노에서의 구원의 측면에서 다시 설명하고 있다. 왜?
- 하나님의 긍휼의 풍성함, 사랑의 위대함을 알게 하고자 한다. 이를 7절 이후에서 다시 강조 반복한다.
<살펴볼 본문 2:7-10>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본문파악을 위한 질문 2.
①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인가요(7)? ②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렇게 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8-9)? ③ 이는 어떤 이유와 목적이 더 있기 때문인가요(10)?
① 7절. 우리를 구원하신 것(1-6절의 요약: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은, 그 목적이, 자비하심으로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오는 여러 세대에, 우리에게,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나타내려 하심이다.
-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이다.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성도들이 이것을 보고 알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변질되면 안 된다. 이 일이 지속되어야 한다.
*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생각할 때, 그의 은혜가 지극히 풍성한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고자 그 아들을 십자가 죽음에 내어주신 것이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아 알도록, 때가 될 때 말씀을 잘 심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십자가 사랑을 깨닫도록.)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택한 자들이 이것을 깨닫게 되도록 도우신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 주고, 기도하게 하고, 복음을 심어야 한다(소감 훈련이 그래서 중요하다).
② 8-9절.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나타내려 하시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 즉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고,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 구원의 일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라는 점이다.
- 믿음으로 말미암아? 과정을 보면 우리가 믿은 것을 보시고, 우리가 믿은 것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인데, 이것을 두고 오해하게 될까봐 부연설명을 한다.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더 들어가면,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 하나님이 택하신 자를 어찌하든지 하나님이 믿을 수 있게 하신다. 이 과정에서 우리도 하나님 역사의 한 부분을 맡아서 손과 발이 되어서 믿을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해주고, 간증을 해주고, 기도해 주고 할 뿐이다. 결국 하나님이 택하신 자는 믿게 하신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를 믿게 하고자, 구원하시고자,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가 그들을 돕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이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뭘 해주는 것이 아니다. 섬기는 자는 이런 것을 의로 삼으면 안 된다. 구원을 받게 된 자도 자기에게서 난 것 같이, 자기의 행위로 된 것 같이 자랑하고, 의를 삼으면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 행위를 자랑하는 것으로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③ 10절. 또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전에 예비하신 일인 선한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지으심을 받음으로, 하나님이 만드신바(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이며, 우리로 그 가운데서(하나님이 지으신 목적, 곧 선한 일들 가운데) 행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 10절은 앞에 나온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신 것,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이,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를 7,8절에 이어 세 번째로 설명하는 말씀이다.
- 한 마디로 우리는 하나님의 만드신 바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작업하신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곧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진 작품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으심을 받음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인, 전에 예비하신 선한 일들에 대하여, 곧 하나님이 뜻하신 선한 일들에 대하여, 우리로 그 선한 일들 가운데 행하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탄생한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전에 예비하신 선한 일들? 사람은 첫 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인간에게 오직 선한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다. 다른 것은 악한 일이다. 자기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해서, 횡령해서 자기 것인 양 하는 것이다. 선한 일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착한 일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큰 틀 안에 포함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영접한다면, 우리는 ‘자기를 위하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로 삶의 중심을 변화해야 한다. 그것이 이 세상의 시대를 따르지 않는 길이 된다.
* 하나님이 하신 일과 그 목적이 분명하게 밝혀질 때, 그 다음 이야기가 가능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살펴볼 본문 2:11-13>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본문파악을 위한 질문 3.
① 그러므로 구원 받은 에베소 성도들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11-12)? ②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어떻게 되었나요(13)? ③ 우리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랬던 우리가 이제는 어떤 자가 되었나요?
① 11-12절. 구원 받기 전에 그때에 자신들이 어떤 자들이었는가를 생각해야 된다. 그때에 자신들이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유대인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고 불렸던 것, 그때에 자신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던 것이다.
- 그러므로? 사정이 1-10절과 같으므로란 뜻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 앞의 진리를 기초로, 잘 생각해야 한다.
- 전에 자기가 어떤 자이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올챙이 시절 모르는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교만해지지 않도록.
-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다. 그런 구체적인 것들에 대한 감각, 옛날의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었는가를 되살려 느낄 수 있다. 하나하나가 얼마나 절실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 감각을 잃어버릴 때 교만해 진다.
- 우리 같으면, 전에 어떤 자였는가를 생각해야 할까? 그리스도 밖에, 이스라엘 나라 밖에, 약속의 언약들이 없는, 세상에서 소망이 없던, 하나님이 없던, 그래서 어떠했는가를, 그런 것에 해당되는 것들, 경험들?
② 13절. 그런데, 전에 하나님께 멀리 있던 자신들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 과거에 어땠는가만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것은 그랬는데 지금은 어떤 자가 되었는가를 알기 위함이다. 과거의 경험을 기초로 현재를 아는 자는 처신이 다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되고, 과거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게 된다.
- 소감은 결국 이 둘을 반복해서 오가야 한다. 현재의 은혜를 과거의 자신을 기초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전에 하나님께 멀리 있던? 눅 15장에서 말한다면 먼 나라에 있던, 돼지치기가 되었던,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나 주는 자가 없어 절망하던 자.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다? 집에 돌아온 둘째 아들과 같이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는 자녀가 되었는데, 성도요 목자가 되었는데,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그의 십자가 보혈 때문에 이것이 된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은 고의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 고의로 죄를 짓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히 10:29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요,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③ 우리도 과거에는 에베소 성도들과 마찬가지 처지에 있던 자들이었다. 이방인이었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도 외인이고, 세상에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던 자였다. 그랬던 우리가, 전에 하나님께 멀리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지게 되었다.
- 각자의 B.C 라이프를 5-10줄로, 1,2분 안에 구체적으로 간증할 수 있을 만큼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이를 반복할 때마다 이를 피부에 와 닿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살릴 수 있는 간증으로.
<살펴볼 본문 2:14-18>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2:15a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2:15b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파악을 위한 질문 4.
①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워진 것은 예수님이 누구이시기 때문이며, 어떻게 하셨기 때문인가요(14-15a)? ②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이 둘(유대인과 이방인)을 어떻게 만들고자 함인가요(15b-16)? ③ 또한 예수님께서 오셔서 평안을 전하신 것은 그 목적이 무엇인가요(17-18)?
① 14-15a.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화평이시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시고, 둘로 하나를 만드는 우리의 화평이시기 때문이다.
-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하신 그리스도를 좀 더 설명한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피(속죄소가 되는 피)를 흘리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의 화평이시다. 이 예수님은 둘로 하나를 만드시는 분이시다. 이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 둘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말하고, 서로 분열하고 반목하는 성도들을 말한다. (또한, 죄인인 우리와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도 함축한다.)
-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 성전의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별하여 이방인의 뜰과 유대인의 뜰 사이에 있던 담을 생각하며 말한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분리하는 이런 막힌 담은 결국 죄로 인한 것이다. 죄 때문에 화평을 이룰 수 없다. 같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열과 반복의 본질은 이것이다. 예수님은 이 막힌 담(벽)을 자기 육체로 허셨다. 자기 육체로 죄를 담당하심으로써 허셨다.
-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 이방인이 유대인과 함께 하나님께 나오지 못하게 했던, 이런 막힌 담의 근거가 되었던 것이 계명과 규제를 가지고 있는 율법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율법이 이런 벽을 만드는 것을 폐하셨다. 예수님 안에서는 다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게 하셨다.
② 15b-16절. 예수님이 이렇게 하시는 우리의 화평이 되신 목적은 이 둘 곧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평하게 하시고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으려 하심이며, 또한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다.
- 유대인과 이방인이 적대 없이, 차별 없이, 대등하게 예수님 안에서 한 새 사람이 되게 하려(지으려) 하신 것이었다.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 한 몸이란, 1장에서 말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 된 교회가 된 것을 말한다. 한 몸의 지체로서 똑 같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 교회는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귀천으로 인한 차별이 없이 한 몸의 지체로서 평등한 존재들로 서로 존중하여 대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찬송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③ 17-18. 예수님께서 먼데 있는 이방인과 가까이 있는 유대인에게 평안을 전하신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이는 이 둘이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 되는 것을 말한다.
- 예수님께서 평안을 전하신 것? 먼 데 있는 이방인이나 가까이 있는 유대인이나 똑 같다. 이는 복음을 전하신 것을 말한다.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전하셨고, 또 이방에는 사람들을 보내어 전하셨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같이 한 몸으로서의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 되게 하려 하심이었다.
<살펴볼 본문 2:19-22>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본문파악을 위한 질문 5.
① 그러므로 에베소 성도들은 이제부터 자신들이 어떤 신분임을 알아야 하나요(19)? ② 예수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셔서 이런 성도들로 세우신 것이 무엇인가요(20)? ③ 예수님 안에서 각 교회는 서로 연결하여 무엇이 되기 위해 함께 지어져 가며, 이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임을 말하고 있나요(21-22)?
① 19. 그들은 이제부터 외인도,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의 신분임을 알아야 된다.
- 이것이 말하는 것? 구원이라는 것이 한 개인으로서 죄에서 구원받게 된 것이 다가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동료 시민이 된 것이고, 하나님의 권속, 새로운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실현이 된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 세례는 구원의 선포에만 초점이 있지 않고, 교회 공동체에 지체로 들어오는 것의 의미로 행해졌다. 나는(그는) 이제 하나님의 권속, 가족임을 선포하는 의미로 행해졌다.
② 20. 예수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셔서 성도들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신 것이 바로 교회이다.
- 구원은 개인적으로 천국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니의 백성의 공동체가 되기 위한 것이다.
- 여기서 말하는 교회를 정리하면 교회는 무엇인가? 성전의 건물을 유추로 사용하여 말한다. 예수님이 친히 모퉁잇돌(기초석, 구원의 반석)이 되셔서(사 28:16), 성도들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형성한 터 곧 그들이 예수님에게 받은 것을 가르치고 전한 것 위에 세우신 것이다. (그것은 철저히 모퉁잇돌이신 예수님의 가르침, 행하심에 기초해야 한다.)
- 결국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는 동료가 되는 것이고, 성전이 되는 것이다. 건물로서의 예루살렘의 성전도 이정표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라는 공동체,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성전이 되는 것의 표지판이었다.
③ 21-22. 예수님 안에서 모든 교회는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간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 교회다. 교회의 본질은 단지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다. 본질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곧 성전이 된 공동체이다.
- 성도들은 외적인 건물로서의 성전에 모이는 사람들이 아니다. 성도들은 예수님 안에서 성전이 된 공동체이다.
- 그러나 이 성전은 완성이 된 성전은 아니다. 완성되어져 가는 중에 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교회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완성된 성전이 된다.
* 엡2장이 말하는 요지가 무엇일까?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으로서의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이다.
-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거룩성을 지켜야 한다.
- 그리스도가 교회의 모퉁잇돌이다. 철저히 그리스도의 가르침, 행하심에 기초한 곳이 되어야 한다. 화평을 지향하는 곳이 되어가고, 우주적 교회의 지체이기에 합당한 교회(거룩한 공교회)이어야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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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의 속성에 대해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우리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라고 고백 하였는데, 이 고백은 공교회(보편적 교회)는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의 4가지 속성을 가지는 교회임을 말한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 한 성전으로서의 화평을 지향하고, 성도들의 거룩함에 기초한 거룩성을 지켜 나가고, 무형교회만을 보편적 교회로 여기는 보편성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가르침에 성실한 사도성을 가져야 한다.
에베소서 제2강 / 교회의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 / 에베소서 2:1-22(요절 19) (①1-10 / ②11-22) / 찬송가 403, 351
* 본문은 사람의 두 가지 절망적인 상태에 대해 말하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한 가지는 1-10절의 허물과 죄 아래 갇힌 것이고, 또 한 가지는 11-18절의 분열과 반목 속에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이 하신 일은 이런 사람을 구원하시고, 다시 연합하게 하신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승전의 기념비로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교회를 하나님의 거할 처소 곧 성전으로 지어나가신다.
- 이를 통해 교회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하나님 중심의 교회론이라고 할 수 있다.
* 1장에서는 몸에 비유해 예수님이 머리이신 공동체임을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그 뜻을 이루는 곳이어야 한다.
- 2장에서는 성전건물에 비유해, 예수님을 모퉁잇돌로 하는 영적인 성전임을 말씀하신다. 이러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곧 성전이 되는 데 있다. 이런 영적 성전인 교회로서 교회는 아직도 건축 중에 있다. 온 세상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중에 있는 것이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 세상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이 성전에 참여하여 지어져 간다. 그 완성된 모습은 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성이 상징하는 것이다.
* 영적 성전으로서의 교회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 한 교회는, 한 특수한 부분으로 존재하지만, 본질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영적 성전이 되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다. 교회의 모든 사람과 모든 모임, 모든 사역은 철저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속량 받은 것이 기초가 되고, 예수님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은 안 된다.
- 교회는 무엇을 드러내는 곳이어야 하는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승리의 기념비로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광을 드러내는 곳이 되어야 한다.
<살펴볼 본문 2:1-6>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이는 원래는 없고, 5절에 함께 살리셨다로 연결된다.)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본문파악을 위한 질문 1.
① 에베소 성도들은 과거 어떤 상태에 있었으며, 그때에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요(1-2)? ② 우리도 전에는 어떠했나요(3)? ③ 그런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그들과 우리를 어떻게 하셨나요(4-6)?
* 먼저 1-5절의 문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너희의 허물들과 죄들로 죽었던 너희를 이라고 한 후, 일단 앞의 허물과 죄들에 관련해서 좀 더 말한다. 너희가 그(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행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때에 이 세상 풍속을 따라 허물과 죄를 행한 것이며, 그것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지금 역사하는 영의, 공중의 권세의, 통치자를 따라 행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다 그(죄들) 가운데서 지냈다. 전에는 우리도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면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다. 그런 우리는 본질상 다른 이들과 같이 진노의 자녀들이었다. 그런데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그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서였다. 1-7절까지가 원문은 한 문장이다.
① 1-2절.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다. 그때에 그들은 죄 가운데서 살았다. 말하자면, 이 세상 풍속을 따라 죄 가운데서 살았고,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지금 역사하는 영인 공중의 권세의 통치자를 따라 죄 가운데서 살았다.
- 허물과 죄? 허물은 곁에 떨어진, 이탈한 것을 말한다. 죄는 목표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같은 개념을 표현하는 다른 말로 보면 된다. 중언법이라고 한다.
- 죽었다? 예수님과 함께 살리셨다고 할 때,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창 1-3장을 기초로 하면, 죄로 인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생명의 능력, 1:28)의 공급이 중단된 상태에 있는 사람, 하나님이 없는 사람의 상태로서,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죽음이 독재자로 지배한다. 현재의 삶에서든, 무덤에서든.
- 이 세상 풍속을 따라 죄 가운데 살았다? 살다는 걷다를 말한다. 삶의 방식을 말한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걸어야 하는데(신 5:33, 시 1:1), 현재의 세상적인 시대(age of this world), 하나님을 배제한 시대를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 불순종의 아들들?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살지 않는 사람들이다. 불신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들 중에서도 이론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실천적으로는 무신론자들이 있을 수 있다_류호준 교수)
- 그들 가운데서 지금 역사하는 영인 ((공중의 권세의) 통치자)를 따라, 죄 가운데서 살았다? 공중의 권세의 통치자는 사단을 말한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베드로),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살지 않을 때(유다), 사탄이(그 세력을 통해) 그들 가운데 역사한다. 영향력을 미친다. 불순종을 야기한다.
* 참고로, 성도와 비신자와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하나님이 이끄셔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를 사단이 끊어놓을 수는 없다(롬 8:39).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 예수님 안에서(예수님을 통해서) 깨우쳐 주시고, 책망하시고, 연단하시고, 이끄신다. 그러나 후자는 죄 가운데 살며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② 3절. 마찬가지로 전에는 우리도 다 죄 가운데서 살았다. 우리도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았다. 이런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
- 우리도 다 죄 가운데서 살았다? 수신자들과 동질감을 만들고자 말한다. 구원 받기 전에는 우리도 그랬다. 유대교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지 못했다. 실제로는 어떻게 살았는가?
-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았다? 육체는 사르크스, 죄악된 본성을 가리카는 단어다. 그런 본성의 욕심 곧 죄악 된 욕심을 따라 살았다. 그것은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없었을 때, 우리의 육체와 마음이 간절히 원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길이 아닌 것)을 하며 살게 된다.
- 본질상 진노의 자녀? 진노의 자녀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관용구다. 본질상? 겉으로는 유대인으로 하나님의 백성처럼 보였지만 내용상으론. 진노는 현재(롬 1:18)와 장래(롬 5:9)의 진노(곧 형벌) 모두를 말한다.
③ 4-6절. 그런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의 큰 사랑 때문에, (1,2절의 그런 너희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이는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함께 일으키셨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함께 앉히셨다.
- 너희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하나님께서 그의 풍성한 긍휼과 큰 사랑으로 하신 일이 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일이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것을 말한다. 사랑은 아가페로, 애정, 호의, 자비심을 말한다.
-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만이 필요하다. 똑 같이 가치 없는, 대등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이에 기초로 서로에 대해 지위고하, 남녀노소, 빈부귀천과 상관없이 존경과 호의로 대해야 한다.
-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너희와 우리를 함께 살리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실 때, 하나님은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함께 살리셨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는 속량하시고, 부활의 새 생명을 함께 다시 공급해 주셨다. 이런 자들을 두고, 복 있는, 복 아래 있는 자들이라고 한다. 산상수훈은 이런 상태에 있음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말씀이다.
* 이는 죽음과 진노에서 구원을 받은 것인데,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 이렇게 살리신 것은,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실 때 함께 일으키신 것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함께 앉히신 것이다.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신 존재다. 현실적으로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 1장 전반부의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을,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던 자였는가를 기초로, 죽음과 진노에서의 구원의 측면에서 다시 설명하고 있다. 왜?
- 하나님의 긍휼의 풍성함, 사랑의 위대함을 알게 하고자 한다. 이를 7절 이후에서 다시 강조 반복한다.
<살펴볼 본문 2:7-10>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본문파악을 위한 질문 2.
①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인가요(7)? ②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렇게 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8-9)? ③ 이는 어떤 이유와 목적이 더 있기 때문인가요(10)?
① 7절. 우리를 구원하신 것(1-6절의 요약: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은, 그 목적이, 자비하심으로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오는 여러 세대에, 우리에게,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나타내려 하심이다.
-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이다.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성도들이 이것을 보고 알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변질되면 안 된다. 이 일이 지속되어야 한다.
*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생각할 때, 그의 은혜가 지극히 풍성한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고자 그 아들을 십자가 죽음에 내어주신 것이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아 알도록, 때가 될 때 말씀을 잘 심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십자가 사랑을 깨닫도록.)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택한 자들이 이것을 깨닫게 되도록 도우신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 주고, 기도하게 하고, 복음을 심어야 한다(소감 훈련이 그래서 중요하다).
② 8-9절.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나타내려 하시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 즉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고,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 구원의 일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라는 점이다.
- 믿음으로 말미암아? 과정을 보면 우리가 믿은 것을 보시고, 우리가 믿은 것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인데, 이것을 두고 오해하게 될까봐 부연설명을 한다.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더 들어가면,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 하나님이 택하신 자를 어찌하든지 하나님이 믿을 수 있게 하신다. 이 과정에서 우리도 하나님 역사의 한 부분을 맡아서 손과 발이 되어서 믿을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해주고, 간증을 해주고, 기도해 주고 할 뿐이다. 결국 하나님이 택하신 자는 믿게 하신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를 믿게 하고자, 구원하시고자,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가 그들을 돕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이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뭘 해주는 것이 아니다. 섬기는 자는 이런 것을 의로 삼으면 안 된다. 구원을 받게 된 자도 자기에게서 난 것 같이, 자기의 행위로 된 것 같이 자랑하고, 의를 삼으면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 행위를 자랑하는 것으로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③ 10절. 또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전에 예비하신 일인 선한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지으심을 받음으로, 하나님이 만드신바(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이며, 우리로 그 가운데서(하나님이 지으신 목적, 곧 선한 일들 가운데) 행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 10절은 앞에 나온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신 것,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이,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를 7,8절에 이어 세 번째로 설명하는 말씀이다.
- 한 마디로 우리는 하나님의 만드신 바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작업하신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곧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진 작품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으심을 받음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인, 전에 예비하신 선한 일들에 대하여, 곧 하나님이 뜻하신 선한 일들에 대하여, 우리로 그 선한 일들 가운데 행하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탄생한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전에 예비하신 선한 일들? 사람은 첫 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인간에게 오직 선한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다. 다른 것은 악한 일이다. 자기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해서, 횡령해서 자기 것인 양 하는 것이다. 선한 일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착한 일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큰 틀 안에 포함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영접한다면, 우리는 ‘자기를 위하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로 삶의 중심을 변화해야 한다. 그것이 이 세상의 시대를 따르지 않는 길이 된다.
* 하나님이 하신 일과 그 목적이 분명하게 밝혀질 때, 그 다음 이야기가 가능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살펴볼 본문 2:11-13>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본문파악을 위한 질문 3.
① 그러므로 구원 받은 에베소 성도들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11-12)? ②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어떻게 되었나요(13)? ③ 우리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랬던 우리가 이제는 어떤 자가 되었나요?
① 11-12절. 구원 받기 전에 그때에 자신들이 어떤 자들이었는가를 생각해야 된다. 그때에 자신들이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유대인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고 불렸던 것, 그때에 자신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던 것이다.
- 그러므로? 사정이 1-10절과 같으므로란 뜻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 앞의 진리를 기초로, 잘 생각해야 한다.
- 전에 자기가 어떤 자이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올챙이 시절 모르는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교만해지지 않도록.
-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다. 그런 구체적인 것들에 대한 감각, 옛날의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었는가를 되살려 느낄 수 있다. 하나하나가 얼마나 절실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 감각을 잃어버릴 때 교만해 진다.
- 우리 같으면, 전에 어떤 자였는가를 생각해야 할까? 그리스도 밖에, 이스라엘 나라 밖에, 약속의 언약들이 없는, 세상에서 소망이 없던, 하나님이 없던, 그래서 어떠했는가를, 그런 것에 해당되는 것들, 경험들?
② 13절. 그런데, 전에 하나님께 멀리 있던 자신들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 과거에 어땠는가만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것은 그랬는데 지금은 어떤 자가 되었는가를 알기 위함이다. 과거의 경험을 기초로 현재를 아는 자는 처신이 다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되고, 과거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게 된다.
- 소감은 결국 이 둘을 반복해서 오가야 한다. 현재의 은혜를 과거의 자신을 기초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전에 하나님께 멀리 있던? 눅 15장에서 말한다면 먼 나라에 있던, 돼지치기가 되었던,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나 주는 자가 없어 절망하던 자.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다? 집에 돌아온 둘째 아들과 같이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는 자녀가 되었는데, 성도요 목자가 되었는데,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그의 십자가 보혈 때문에 이것이 된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은 고의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 고의로 죄를 짓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히 10:29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요,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③ 우리도 과거에는 에베소 성도들과 마찬가지 처지에 있던 자들이었다. 이방인이었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도 외인이고, 세상에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던 자였다. 그랬던 우리가, 전에 하나님께 멀리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지게 되었다.
- 각자의 B.C 라이프를 5-10줄로, 1,2분 안에 구체적으로 간증할 수 있을 만큼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이를 반복할 때마다 이를 피부에 와 닿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살릴 수 있는 간증으로.
<살펴볼 본문 2:14-18>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2:15a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2:15b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파악을 위한 질문 4.
①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워진 것은 예수님이 누구이시기 때문이며, 어떻게 하셨기 때문인가요(14-15a)? ②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이 둘(유대인과 이방인)을 어떻게 만들고자 함인가요(15b-16)? ③ 또한 예수님께서 오셔서 평안을 전하신 것은 그 목적이 무엇인가요(17-18)?
① 14-15a.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화평이시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시고, 둘로 하나를 만드는 우리의 화평이시기 때문이다.
-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하신 그리스도를 좀 더 설명한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피(속죄소가 되는 피)를 흘리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의 화평이시다. 이 예수님은 둘로 하나를 만드시는 분이시다. 이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 둘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말하고, 서로 분열하고 반목하는 성도들을 말한다. (또한, 죄인인 우리와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도 함축한다.)
-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 성전의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별하여 이방인의 뜰과 유대인의 뜰 사이에 있던 담을 생각하며 말한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분리하는 이런 막힌 담은 결국 죄로 인한 것이다. 죄 때문에 화평을 이룰 수 없다. 같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열과 반복의 본질은 이것이다. 예수님은 이 막힌 담(벽)을 자기 육체로 허셨다. 자기 육체로 죄를 담당하심으로써 허셨다.
-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 이방인이 유대인과 함께 하나님께 나오지 못하게 했던, 이런 막힌 담의 근거가 되었던 것이 계명과 규제를 가지고 있는 율법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율법이 이런 벽을 만드는 것을 폐하셨다. 예수님 안에서는 다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게 하셨다.
② 15b-16절. 예수님이 이렇게 하시는 우리의 화평이 되신 목적은 이 둘 곧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평하게 하시고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으려 하심이며, 또한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다.
- 유대인과 이방인이 적대 없이, 차별 없이, 대등하게 예수님 안에서 한 새 사람이 되게 하려(지으려) 하신 것이었다.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 한 몸이란, 1장에서 말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 된 교회가 된 것을 말한다. 한 몸의 지체로서 똑 같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 교회는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귀천으로 인한 차별이 없이 한 몸의 지체로서 평등한 존재들로 서로 존중하여 대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찬송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③ 17-18. 예수님께서 먼데 있는 이방인과 가까이 있는 유대인에게 평안을 전하신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이는 이 둘이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 되는 것을 말한다.
- 예수님께서 평안을 전하신 것? 먼 데 있는 이방인이나 가까이 있는 유대인이나 똑 같다. 이는 복음을 전하신 것을 말한다.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전하셨고, 또 이방에는 사람들을 보내어 전하셨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같이 한 몸으로서의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 되게 하려 하심이었다.
<살펴볼 본문 2:19-22>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본문파악을 위한 질문 5.
① 그러므로 에베소 성도들은 이제부터 자신들이 어떤 신분임을 알아야 하나요(19)? ② 예수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셔서 이런 성도들로 세우신 것이 무엇인가요(20)? ③ 예수님 안에서 각 교회는 서로 연결하여 무엇이 되기 위해 함께 지어져 가며, 이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임을 말하고 있나요(21-22)?
① 19. 그들은 이제부터 외인도,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의 신분임을 알아야 된다.
- 이것이 말하는 것? 구원이라는 것이 한 개인으로서 죄에서 구원받게 된 것이 다가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동료 시민이 된 것이고, 하나님의 권속, 새로운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실현이 된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 세례는 구원의 선포에만 초점이 있지 않고, 교회 공동체에 지체로 들어오는 것의 의미로 행해졌다. 나는(그는) 이제 하나님의 권속, 가족임을 선포하는 의미로 행해졌다.
② 20. 예수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셔서 성도들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신 것이 바로 교회이다.
- 구원은 개인적으로 천국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니의 백성의 공동체가 되기 위한 것이다.
- 여기서 말하는 교회를 정리하면 교회는 무엇인가? 성전의 건물을 유추로 사용하여 말한다. 예수님이 친히 모퉁잇돌(기초석, 구원의 반석)이 되셔서(사 28:16), 성도들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형성한 터 곧 그들이 예수님에게 받은 것을 가르치고 전한 것 위에 세우신 것이다. (그것은 철저히 모퉁잇돌이신 예수님의 가르침, 행하심에 기초해야 한다.)
- 결국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는 동료가 되는 것이고, 성전이 되는 것이다. 건물로서의 예루살렘의 성전도 이정표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라는 공동체,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성전이 되는 것의 표지판이었다.
③ 21-22. 예수님 안에서 모든 교회는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간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 교회다. 교회의 본질은 단지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다. 본질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곧 성전이 된 공동체이다.
- 성도들은 외적인 건물로서의 성전에 모이는 사람들이 아니다. 성도들은 예수님 안에서 성전이 된 공동체이다.
- 그러나 이 성전은 완성이 된 성전은 아니다. 완성되어져 가는 중에 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교회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완성된 성전이 된다.
* 엡2장이 말하는 요지가 무엇일까?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으로서의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이다.
-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거룩성을 지켜야 한다.
- 그리스도가 교회의 모퉁잇돌이다. 철저히 그리스도의 가르침, 행하심에 기초한 곳이 되어야 한다. 화평을 지향하는 곳이 되어가고, 우주적 교회의 지체이기에 합당한 교회(거룩한 공교회)이어야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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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의 속성에 대해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우리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라고 고백 하였는데, 이 고백은 공교회(보편적 교회)는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의 4가지 속성을 가지는 교회임을 말한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 한 성전으로서의 화평을 지향하고, 성도들의 거룩함에 기초한 거룩성을 지켜 나가고, 무형교회만을 보편적 교회로 여기는 보편성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가르침에 성실한 사도성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