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_요한계시록02.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에 주신 메시지

요한계시록의 메시지 (02. 요한계시록 2:1-1)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에 주신 편지

(처음과 같이 사랑하라, 끝까지 충성하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2:10)


오늘 본문 말씀은 주님께서 일곱 교회에 주신 편지 중에서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실제로 각 교회에는 일곱 교회에 주시는 편지와 요한계시록 말씀 전체가 하나의 두루마리로 전해집니다. 그러면 각 교회는 당연히 주님이 다른 교회에 주시는 말씀도 모두 듣게 됩니다. 그래서 각 교회에 주시는 편지의 끝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모든 교회가 일곱 교회에 주시는 모든 말씀을 잘 통합해서 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두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살펴 보기 전에 한 가지를 더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각 교회에 편지의 형식으로 주시는 말씀들이 일정한 형식으로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편지는 먼저 각 교회에게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밝힙니다. 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로 주님의 것입니다. 교회는 주인이신 주님에 대해서 먼저 가장 잘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교회에 대해서 다 아시는 주님이심을 밝힙니다. 주님은 교회가 잘 하고 있는 것도 다 아시고, 잘못하고 있는 것도 다 아십니다. 잘 하고 있는 것은 알아 주시고 칭찬해 주십니다. 잘못하고 있는 것은 책망하시며 회개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오셔서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 후에 이기는 자에게는 약속을 주십니다. 이기는 자는 주님의 뜻대로 하는 교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신자들을 뜻합니다. 그 약속은 주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구원이 완성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 주님이 주실 복을 뜻합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주님이 주실 은혜와 평강의 약속입니다. 


편지의 마지막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마무리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가 교회 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오직 예수님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알도록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우리의 귀를 주님이 들으라고 하시는 것에 초점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종종 어떤 사람을 두고 귀가 얇은 사람이라는 말을 쓸 때가 있습니다. 귀가 얇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유혹의 말을 잘 듣습니다. 온갖 그럴 듯한 것에 귀를 열고 귀를 기울입니다. 그래서 사깃군에게 잘 속습니다. 신자들이라면 이런 사람이 이단에 잘 빠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속이 어떠하냐는 자기중심성 때문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이런 우리가 주님의 뜻에 기초해 듣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 오직 나에게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복, 은혜와 평강을 얻습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첫째,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 (1-7)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은 이런 내용입니다. 먼저 주님은 자신을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라고 밝히십니다. 이런 주님으로서, 에베소 교회의 행위들 곧 수고와 인내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수고가 필요했던 일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인내가 필요했던 일은 에베소 교회가 참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 책망할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주님은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에베소 교회에서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미워한다고 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해야 하는가 고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은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후에 주님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주님의 말씀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영접하고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란 이런 사람을 뜻합니다. 주님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심으로 말씀을 마치십니다.


에베소 교회에 주신 주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첫째는, 교회에게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일곱 별과 일곱 촛대는 지난주에 의미를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자신을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라고 밝히신 것은 이런 뜻입니다. 교회는 오직 주님이 창설자이시며, 주관자이시라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교회는 주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오직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한 그들만의 수고를 알아주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수고는 일을 할 때 겪는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대개의 일은 고통이 따릅니다. 고통을 즐기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멋있는 말일 뿐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감당해야 했던 수고는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는 수고였습니다. 예수님은 선과 악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정리해 주신 적이 있으십니다. 마가복음 3:4에서 선을 행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요 악을 행하는 것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참된 말씀만 하십니다. 반면에 마귀는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합니다. 이를 위해 마귀는 거짓을 제 것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속한 일만이 진정으로 선한 일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모든 일은 악한 일입니다. 공자와 석가처럼 위대한 일을 한 것처럼 보이는 성인이라 할지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믿고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면 악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악한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한 일은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거짓을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자칭 사도와 예수님이 사도는 어떻게 다릅니까? 자칭 사도는 예수님이 보내시지 않았는데 보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지어낸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도는 예수님의 보내심의 증거, 다른 말로 부르심의 증거가 있습니다. 지난주 본문인 1:2의 요한의 고백처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다 증언합니다. 아마도 6절에 나오는 니골라 당의 니골라는 그런 자칭 사도였을 것입니다. 니골라는 다음주 본문에 나올 때 좀 더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한 마디로 구약 성경 민수기에 나오는 발람 선지자와 같은 자입니다. 발람을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이런 발람은 하나님의 종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한 일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 저주받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발람의 꾀로 인해 음행과 우상숭배에 빠진 하나님의 백성이 24000명이나 죽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거짓을 드러내는 일은 많은 영혼을 살리는 일이 됩니다. 그 일은 고통이 따르지만 그 일은 주님이 알아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일입니다. 


셋째는,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인내한 일을 알아주시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참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이었습니다. 게으르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묵묵히 주의 이름을 위하여 자기가 할 일을 했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다 경험하는 것이지만 주와 복음을 위한 일은 오직 주님의 이름을 위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일을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합니다. 죽으면 다 없어지는 인생의 허망함 앞에서 이름이라도 남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삽니다. 그가 주와 복음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하나 같이 참고 견디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요즘 우리는 주일 예배 환경 준비를 각 요회가 돌아가며 섬깁니다. 제가 학생 시절부터 인턴 목자를 하기까지의 시기는 장막팀 형제들과 인턴목자들이 매주 토요일 밤마다 1년이고 2년이고 끝없이 예배홀을 청소하고 의자를 놓고 그랬습니다. 그때 참 은혜롭기도 했지만 고달프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예배 홀 청소담당인 회장단 요회를 두 달이 아니라 몇 년씩 바꾸지 않고 한 요회만 하게 한다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주의 일이 무엇이든지 은혜와 감사함으로 섬깁니다. 그 어느 것도 참고 견디며 섬기지 않아도 되는 일은 없지만, 참고 견디며 성실하게 할 일을 합니다. 이런 인내가 오늘의 우리의 교회가 서 있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것을 아무도 모르고, 주님조차도 모르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참고 견디며 섬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주의 일은 하지 않는 것이, 힘쓰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주의 일을 하는 것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의 일에 힘쓰라고 하시고, 너희의 수고, 너희의 인내는 헛되지 않을 줄 안다고 하셨습니다(고전 15:58). 주님은 각자의 자리에서 참고 견디며 섬기는 여러분 모두를 알고 계시며, 잘 한다고 칭찬하심을 믿습니다.


넷째는,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시고, 어디서 그것이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은 예수님을 믿은 후, 처음에 서로 사랑하게 되는 사랑을 말합니다. 전에는 아무 인연도 상관도 없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같이 믿는 이유 하나 때문에 함께 교회를 이루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형제와 자매가 되었고 사랑하게 됩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때문에, 서로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고자 하고, 물심양면으로 섬기고자 하고 위하여 기도해 줍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그런 처음 사랑을 점점 버렸습니다. 아마도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고자 하면서, 자칭 사도라 하는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는 일들을 하게 되면서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과정을 겪었을지라도, 처음 사랑, 예수님 때문에 하는 사랑은 언제나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어떻게 할지의 세 가지 과정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기억하고, 회개하고, 다시 행하는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은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이 삶의 골짜기에 떨어졌을 때 아버지 집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입니다. 기억할 때 어디서부터 잘못이 시작되었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버지 집을 떠난 것입니다. 이렇게 기억할 때 회개하게 됩니다. 내가 아버지께 가서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용서를 빌게 됩니다. 또한 다시 사랑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주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길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런 교회는 주님이 없애신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함께 사랑의 기둥이라는 두 기둥이 다 서 있어야 지속적으로 존속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섯째는,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에게는 주님이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람은 생명 나무가 있는 에덴에서 죄로 말미암아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구원 받은 자기 백성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 다시 하나님의 낙원에 들어가게 하시고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시고 영생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상을 통해 모든 교회는 오직 주인이신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교회에게 거룩함을 원하십니다(살전 4:3). 이를 주님의 뜻을 아는 신자는 악한 자들을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짝퉁을 만들어 자기 교훈을 가르치는 자칭 사도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수고합니다. 그런 중에도 인내로 각자의 할 일, 주의 이름을 위한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 사랑이 식게 되는 딜렘마도 겪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를 알려주시고, 다시 회복하도록 도우십니다. 기억하고, 회개하고 다시 행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도 주님이 주시는 이 말씀을 우리에게도 적용하고자 애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없애버리시는 교회가 되지 않도록,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도록,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인내로서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캠퍼스 미션과 세계 선교의 복음 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 (8-11)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는 이런 내용의 말씀을 주십니다. 주님은 자신이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 살아나신 이라고 밝히십니다. 이는 교회가 알아야 할 주님은 하나님이신 주님, 모든 일의 주권자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먼저 서머나 교회가 겪고 있는 환난 곧 궁핍을 알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하십니다. 또한 주님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안다고 하시며, 그들이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참된 유대인은 바로 서머나교회의 성도들임을 말합니다.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성도들을 비방하는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일 뿐임을 아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서머나 교회는 책망하시는 것은 없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장차 받을 고난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십 일은 짧은 기간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가 이런 환난을 당할 때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끝까지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이 끝까지 충성하면 주님은 그들에게 생명의 관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그들에게도 주님의 말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이기는 자가 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인 부요함의 소중함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경제적으로 몹시 빠듯하고 힘든 교회였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아니고는 하루하루가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돈으로 돌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살기에 경제적 궁핍이 얼마나 큰 환난인지압니다. 환난이란 위기나 어려움을 겪는 동안 우리의 내면에서 겪는 고통을 말합니다. 그런데 서머나 교회는 그로 인하여 주님을 더욱 간절히 찾고 의지해야 했습니다. 이를 통해 경제력으로 살 수 있다고 하는 세상에서, 그런 경제력이 없음에도 주님의 은혜로 살기도 함을 여러모로 체험했을 것입니다. 가난이 힘들지만 가난이 그들을 영적으로 가난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가난의 아픔이 있지만 오히려 주님의 은혜를 더 많이 깨달으며 발견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를 두고 실상은 너희가 부요한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서머나 교회는 우리에게 주님 안에 있는 참된 부요함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줍니다. 우리도 때로 인생의 어떤 시기는 궁핍의 환난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인생은 얼마나 힘들기만 하겠습니까? 그런 때에도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영적 부요함을 가진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영적 부요함은 우리를 누구보다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감사하며 예배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는 가난의 때에도 이런 영적 부요함이 있음을 기억하고 이런 소중한 영적 부요함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는 주님은 그들이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을 받고 있는 것을 알아주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비방을 받는 것도 칭찬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할 수 있으면 비방을 받지 않고 싶습니다. 그런데 서머나 교회를 보면 주님께 죽도록 충성한다고 해서 비방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섬기는 곳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역사도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당시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유대인들이 사탄의 회당이 되어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였습니다. 이때의 비방은 말로만의 비방만이 아니었습니다. 당국에 그리스도인들을 무신론자, 반역자로 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10절은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로마 제국의 법에 따라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로마의 재판에는 징역형이 없습니다. 로마의 재판에서는 오늘날은 상상할 수 없는 죄로도 유죄와 사형이 선고되기도 했습니다. 지난주 예로 든 폴리캅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비방을 받았고 비방을 견뎠습니다. 주님은 이를 알아주셨고 칭찬하셨습니다. 


셋째는, 믿음의 삶에 고난이 따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때 참된 신자는 주님이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신 이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주님은 모든 것의 주관자이십니다. 고난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도 주님은 그 택하신 자를 위하여 그 날을 감하십니다. 본문에서처럼 십 일이 되게 하십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죄와 죽음의 고난을 영원히 영원히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우리의 당할 고난을 십자가에서 대신 당하여 주셨습니다. 일초일초가 영원 같은 고난을 우리를 위해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이 주님의 은혜로 우리의 고난은 십 일 동안이 되었습니다. 영원에 비하면 그저 짧은 고난, 한 때의 고난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래서 우리에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을 죽을 정도로 열심히 주의 일을 하는 것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끝까지 주님께 신실함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설령 죽음의 고난을 당할지라도 폴리캅처럼 주님께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끝까지 사랑을 드리기에 합당한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생명의 관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결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서머나 교회에 주신 이 말씀도 우리에게 성령이 주시는 말씀으로 영접하고 듣고 지키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상을 통해,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 중에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을 교회의 주인이요 주관자이심을 항상 잊지 않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주님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권자이심을 믿고 의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와 사랑의 두 기둥을 함께 세우는 우리가 되고, 궁핍의 환난이나 박해의 고난이 있을 때에도 끝까지 주님께 대한 신실함을 지키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기는 자에게 생명나무의 열매와 생명의 관을 주실 주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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