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_요한계시록04. 사데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편지

요한계시록의 메시지 (04. 요한계시록 3:1-13)


사데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편지

(남은 것을 굳건하게,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3:8)


우리가 지금 배우는 중인 말씀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모든 세대의 모든 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모든 교회들이 주님이 어떤 분으로서 이 말씀을 하시는지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이 편지들을 통해서 교회들이 어떤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는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주님의 이 말씀에 기초해 교회로서의 존속여부를 정하고 상벌을 행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들에게 요한계시록의 이 말씀은 마치 헌법처럼 중요한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잘 알아야 하고, 잘 듣고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일곱 교회 중의 네 교회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교회인 사데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자 합니다.  


사데는 고대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던 번성했던 도시였습니다. 사데 교회는 그런 도시에 있는 명성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보실 때 사데 교회는 죽어가는 교회였습니다. 그것도 심폐 소생과 같은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교회였습니다. 사데 교회는 스스로는 명성을 자랑했는지 모르지만 주님이 보실 때는 칭찬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빌라델비아는 일곱 도시 중에서 가장 작은 도시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교회도 작고 능력도 작았습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이 보실 때 책망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어디 촌 구석의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작은 교회였지만, 주님께는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 교회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교회는 과연 어떤 교회인지를 배우고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사데 교회에 주시는 말씀 (1-6)


1절에서 주님은 요한에게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고 하십니다. 편지의 서두에는 늘 하시던 대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리라고 하십니다. 사데 교회가 특별히 알아야 할 주님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이 죽어가는 사데 교회가 다시 살기 위해 필요한 생명의 성령을 주시는 분이심과, 교회의 지도자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뜻합니다. 이 주님은 사데 교회에 대해서도 그들의 행위들을 아십니다.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였습니다. 죽은 교회란 거의 죽어가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데 교회에게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들 스스로는 자기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라고 여기지만, 주님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데 교회는 그들이 교회로 시작될 때 하나님께 받은 바 복음이 무엇이었는지, 그 복음을 어떻게 영접함으로 교회가 되었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에 기초해 회개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교회의 온전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만일 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주님은 도둑 같이 그들에게 이를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주님이 알지 못하는 때에 그들에게 임하셔서 돌이킬 수 없는 엄한 처분을 내리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사데 요회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닐 것이며 이는 그들이 합당한 자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그들의 그 이름은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주님은 모든 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사데 교회의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그래서 주님과 함께 흰 옷을 입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주님이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을 지우지 아니하는 그런 신자가 될 수 있으며,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와 심판을 집행하는 천사들 앞에서 우리를 ‘내 사람’이라고 시인하시는 그런 신자가 될 수 있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사데 교회에 주신 주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마음에 새겨 들어야 할 말씀은 무엇이겠습니다. 그것은 주님은 우리가 명목상의 신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데 교회는 주님이 보시기에는 명목상의 신자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습니다. 이는 그들이 한 때 신자들로서 살아있다는 말을 들었음을 말합니다. 그들은 한 때 주변 교회들로부터 칭찬도 받고 존경도 받았고, 건강하고 활기찬 교회라는 평판도 얻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교회를 여전히 이런 교회라고 여겼고, 사람들도 그런 교회인 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명목상의 신자들일지 모르지만, 주님이 보시기게 그들은 죽은 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란 영적으로 죽은 자를 뜻합니다. 죽은 자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가 없어지게 됩니다. 이는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 배우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겠지만, 미리 말씀드리면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나 사귐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신자는 자기 소개서의 종교란에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라고 적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구약 전공 교수님이 계시는 데 그분이 예언서 수업 시간에 한 말이 기억납니다. 그분은 자주 이런 신자들을 가리켜 ‘실천적 무신론자’라고 하였습니다. 명목상으로만의 신자는 실제적인 삶에서는 안 믿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에 주신 이 말씀을 통해서,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와 오늘의 우리에게도 죽은 교회, 죽은 신자의 모습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고 하심을 깨닫습니다. 이는 우리가 처음에 복음을 듣고 감격하며 영접하고 주님을 섬기며 살고자 했을 때을 기억함으로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이 보시기에 지금의 자신도 사데 교회와 같은 상태는 아닌지 자기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성령이 주시는 말씀으로 깊이 듣고 소화해야 합니다. 그 말씀은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정신을 차리라는 말씀이면서, 어찌하든지 죽어가는 내 영혼을 살게 하고자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그 말씀은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신자가 되고, 교회가 된 것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영혼이 새생명을 얻고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 마디로 성령님의 역사로 주님의 생명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6:63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중에 자신의 영혼이 메말라가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분이 있다면, 살 길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영이요 생명인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먹든지 마시든지, 깨닫든지, 듣고 영접하든지, 표현은 무엇이라고 하든지 괜찮습니다. 주님의 말씀 만이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영이요 생명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생명이 되도록, 우리는 겸손히 말씀을 공부하고, 겸손히 주일예배를 드리고, 간절히 주님께 성령으로 역사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중에 그 영혼이 살아있는 분들을 보면 공통점은 영이요 생명이신 주의 말씀을 이렇게 듣고 받는 분들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사데교회를 죽은 교회라고 하시면서도, 그렇다고 다 죽은 것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다고 하십니다. 더럽힌다는 단어는 이곳 외에 14:4과 고린도전서 8:7에도 나오는데, 우상숭배를 상징하는 음행의 죄를 짓거나, 이런 죄로 인해 양심이 더러워진 것을 말할 때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를 볼 때 사데교회의 대부분은 앞에서 살펴본 교회들처럼 발람의 교훈을 붙잡고 주님과 세상의 좋아보이는 것에 양다리를 걸친 모습이 되어 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사데 교회의 몇 사람은 다른 사람은 어떻든지 자신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주님은 이런 몇 명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닐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고 하십니다. 


사데 교회의 경우를 통하여 주님은 자기의 옷을 더럽히지 않는 신자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남들이 그 옷을 더럽힌다고 해서 우리도 반드시 그 옷을 더럽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은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과 동행하고자 하기에, 나는 주님이 입혀주신 의의 옷을 더럽히지 않고자 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자 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다 그런 분들임을 믿습니다. 이런 신앙을 두고 로마서 12:2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데 교회에 주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받는 가운데, 명목상의 신자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주님이 입혀주신 옷을 더럽히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며 동행하는 신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 (7-13)


주님은 늘 하시던 대로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도 편지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이 편지를 통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자신이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이시라는 알게 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먼저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목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주님이 그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는 것입나다. 주님이 열린 문을 두셨기에 그 문은 능히 닫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내가 네 행위들을 안다고 하십니다. 사데 교회를 생각하면 주님이 우리를 아신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고 있거나 보고 있는 것 외에도 우리를 보시고 아시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 온전한지 아닌지를 다 보시고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긴장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다른 교회에 하셨던 책망은 한 가지도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고 칭찬만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이런 교회나 신자가 되는 것처럼 복된 일은 없을 것입니다. 


9절에는 주님이 주목하시는 또 한 가지를 우리에게도 주목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빌라델비아에는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이 몇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 중에서 몇을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어 그들로 교회의 발 앞에 절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고자 해서라고 하십니다. 이를 보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탄의 회당인 유대인들의 거짓말로 인한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의 신자들은 어려움을 겪을 때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믿고 섬길 때 주님이 어려움에서 구해 주시고 지켜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계속되면 주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기 쉽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도 그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랬음에도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주님이 정말 자신들을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고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주님도 잘 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때가 될 때 그들에게 어려움을 주었던 유대인들 몇을 그들 앞에 절하며 사죄하게 함으로써, 주님의 그들을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경우를 통해서 이 주님의 때를 믿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런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런 시험의 때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종말의 때에 있을 환난을 말합니다.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신자들이 겪는 이런 저런 어려움의 시간이 당사자에게는 너무나 길에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저 어려움이 끝이 없이 계속되고 영원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이 주님을 바라봄으로 인내의 말씀을 지켜야 함을 뜻합니다. 주님은 속히 오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옳았다는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심으로 우리를 신원(伸冤, 원통한 일을 풀어주심)해 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당한 이 땅의 어려움의 시간이 실상은 잠깐이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장차의 영광은 영원한 것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12절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도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을 약속해 주십니다. 같이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말씀도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어떤 말씀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이 칭찬하시고 사랑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에 대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 교회는 얼마나 큰 교회인가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는 얼마나 주님께 신실한 교회인가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도시의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작은 능력의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의 인내의 말을 지키는 데서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데서도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소위 오늘날 규모나 경제력으로 말하는 크기에서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큰 사업을 벌이거나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데서는 작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크고 위대한 교회였고 사랑스럽기만 한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이런 빌라델비아 교회를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나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공부 시간에 사진을 보여드렸지만, 고대에는 각 도시마다 거대한 신전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신전들의 하나같은 특징은 열주라고 불리는 거대한 기둥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신전이 황폐화 된 후에도 기둥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서 빌라델비아 교회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할 것이다’고 하신 것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가 영원히 중심을 이루게 될 것인지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큰 교회의 유명한 사람들이 대형집회나 행사에서 항상 중심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그 신자들이 중심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왜 입니까? 주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신자는 십자가를 참으신 주님을 따라,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교회와 그 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에는 다음 주에 있을 세계선교대회(World Mission Congress)에 참석하기 위해 오신 선교사님들이 여러분 오셨습니다. 우리 UBF 선교지의 대부분 센터(교회)는 사실 빌라델비아 교회와 규모나 그 신앙에서 같은 교회들입니다. 작은 도시, 작은 능력의 교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이 말씀해 주신 대로, 이분들의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주 앞에 크고 위대한 교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는 사랑스럽기만 한 교회들입니다. 주님은 이분들의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시고, 그 기둥마다 하나님의 이름, 새 예루살렘의 이름, 주님의 새 이름을 새겨 주시고, 영원히 영원히 기념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는 우리의 사랑하는 교회, UBF경희문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을 믿습니다. 우리 역시 이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작은 능력의 교회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며 오늘 여기에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작은 능력일지라도 그 능력을 다해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여기에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능력이지만, 이번 세계선교대회에 오시는 주님의 사랑하시는 선교사님들과 현지의 리더들과 자녀들을 영접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우리에게도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으로 말씀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님이 주신 말씀으로 우리 모두가 큰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사데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은 우리가 혹시라도 명목상으로만 자신을 어떤 교회이거나 나는 어떤 신자이다고 하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점이 있다면 일깨어 회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은 어떻든지 이런 명목상의 신자나 교회가 되지 않기 위해 항상 주님의 말씀을 겸손히 배우고 듣고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말씀에서 배우듯이, 세상의 명성이 아니라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 신실한 교회와 신자가 되고, 그런 신실함을 계속해서 굳게 지키는 교회와 신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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