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제1강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①찬송 받으실 분 하나님 우리 아버지
말씀 / 에베소서 1:1-23
요절 / 에베소서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And God placed all things under his feet and appointed him to be head over everything for the church. NIV)
신약성경은 크게 나누면 복음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복음서와, 복음전파를 통해 교회가 세워진 후 이런 교회들의 문제를 돕기 위해 쓰인 서신서의 둘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이런 서신서의 하나입니다.
에베소서는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후(A.D) 61년경에 보낸 서신입니다. 에베소는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 하에 있는 속주인 아시아(지금의 터키의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로서, 지중해 세계의 매우 큰 대도시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잠깐 방문한 후(A.D 53), 그 1년 후인 3차 전도여행 때 다시 방문하여 3년 동안 머물며 세운 교회였습니다. 이를 볼 때, 에베소서는 그로부터 불과 4,5년 후에 사도 바울이 보낸 서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의 내용을 보면, 그 사이에 에베소 교회에 무슨 문제가 생겨서 그것을 돕고자 보낸 그런 류의 서신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에베소서는 전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성경일까요? 이를 한 마디로 말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한다면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신비를 말하는 서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비란 단어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진리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에베소서에서 말씀해 주시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겠구나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나름대로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교회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말이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라고 하면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건물’로서의 어떤 교회와 그곳에 다니는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교회에 대해 일부분은 말할지 모르지만, 충분히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말만으로는, 교회가 교회일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성도들이 교회 공동체로서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할지 알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한편으로 우리 시대는 ‘세상을 걱정해야 할 교회가, 세상이 걱정하는 교회’가 되었다는 말이 들려오기도 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가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듣는 일은 시의적절한 필요가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번 에베소서 말씀 공부에 복을 내려 주셔서,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지 잘 배우게 해 주시고, 한 마음 한 뜻으로 그런 교회를 세워나가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에베소서 말씀 공부는 1,2,3장까지는 장으로 구분된 의미를 살려 기초공부는 한 장씩 한 번에 공부하지만, 메시지는 두 번으로 나누어 좀 더 충분히 본문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서신서의 특징 상 본문의 문장과 단어들이 다소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한 번에 살펴볼 수 있는 분량이 많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예 본문을 짧게 잡다보면 부분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고, 전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나눌 말씀도 에베소서 1장 전체를 본문으로 하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라는 제목 안에서, 2주간에 걸쳐 전편과 후편으로 나누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에베소서 1장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2절은 간단한 인사말입니다. 3-14절은 찬송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에게 주신 복 때문입니다. 15-23절은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는 내용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런 1장 말씀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 전편에서 주로 살펴볼 14절까지의 내용인,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복을 주신 것은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후편에서 살펴보게 되겠지만, 이를 통해 그 머리가 그리스도이신 교회,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시고,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이 선포되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1장 전반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에 대해서 들을 때, 우리는 이것이 단지 우리가 얼마나 복 받은 자인가를 말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신령한 모든 복을 주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되게 하고, 그런 교회 공동체로서 세상 속에서 살게 하시려는 것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편지를 보내는 자신이 누구인지 소개하기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란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를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사도가 된 사건은 사도행전 9장과 22장에 나와 있습니다. 바울은 본래 성도들을 핍박하러 다니던 극렬 유대교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그런 이야기를 퍼뜨리는 성도들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이단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런 성도들을 멸하여 없애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시고 그를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예수님께로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 6:44).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을 주라 할 수 없고, 그리스도로 믿게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의 전도를 통해서든지, 또는 성경공부나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지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듣게 되고,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되고,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도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시기 때문에, 복음 전파는 직접 사도들과 바울만으로 끝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보내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사람들이 계속 생기게 됩니다. 이는 우리 중에서도 계속 이루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난주에는 김선림 자매가 자기도 목자가 되어 양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며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역사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지난 주일에 박혁재 목자님은 신년 2강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께서 복음전파의 후속 세대를 세워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로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보면서, 우리까지는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우리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걱정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의 뜻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예수님께로 이끄시고 믿고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 같이, 우리 다음에도 후속 세대를 일으키시고 이렇게 계속 하실 것을 믿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런 후속 세대를 맡겨주실 때,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로 준비되도록 능히 도울 수 있는 준비된 성경선생들이 되고, 목자들이 되고자 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기의 소개를 한 다음에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로 인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성도들에게 항상 필요하고, 그래서 항상 서로 빌어주어야 할 인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우리의 아버지로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 교부에게 하나님에 대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무엇을 하셨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사람에게 ‘창조 전에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셨냐고? 그런 주제넘은 질문을 하는 당신 같은 자들을 위해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고 면박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줄 알을 알면 다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것은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닙니다. 3절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본래부터, 처음부터, 영원부터 영원까지 아버지이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있기 전부터, 창조주요 통치자이기 전부터 아버지로서, 성자 예수님과의 사랑 속에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는 어떤 존재입니까? 아버지는 생명을 주는 존재, 자녀를 낳고, 사랑으로 돌보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은혜와 평강임을 아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강을 주시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넘치도록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알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구하고, 서로를 위해 빌어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인사말을 한 후에, 3-14절까지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가 다소 그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원문의 한 문장이 매우 긴 문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번역을 할 때, 무엇이 말하고자 한 주부인지, 무엇이 그 말을 수식하거나 설명하고자 해서 한 말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1장의 경우도, 원문 상으로는 단지 세 문장입니다. 1-2절이 한 문장이고, 3-14절이 한 문장, 15-23절이 한 문장입니다. 그래서 이런 긴 문장이 많은 관계절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3-14절에서 말하고 있는 요지는 무엇일까요?
전체적인 요지는 ‘찬송 받으실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한 마디로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복은 구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을 것을 예정하심으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택하신 목적은 두 가지라고 합니다. 한 가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하시기 위함이고,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거저 주시는 바인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6).
그런 다음, 7-14절까지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시는 바인 그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 곧 죄들의 사함을 받은 것(7-10), 둘째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 곧 상속자가 된 것(11-12), 셋째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인 치심 곧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의 보증이 되시는 성령님을 받은 것입니다(13-14)
이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처럼 복된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9-11장 말씀을 공부할 때,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택하심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임을 배운 바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하나님의 택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임을 배운 바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4-14절은 바로 하나님의 택하심이 얼마나 큰 복을 받은 것이며,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것인지를 설명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것을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복이며, 그것은 하늘에 속한, 참되고 영원한 복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성경에서 복이 처음 나오는 곳은 창세기 1:28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인 복, 하늘에 속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때의 복은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데 필요한 모든 유익한 능력을 뜻했습니다. 그것의 가장 결정적인 내용은 생명의 능력입니다. 감히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추가 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늘날의 배터리와 맥이 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아무리 아이폰6이나, 갤럭시6 또는 갤럭시 노트5의 최신 첨단 폰이라도 배터리가 있어야 합니다. 배터리는 하루살이와 같은 한시적인 것일지라도 일종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도 생명이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의 참된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이요, 하늘에 속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범죄 함으로 이런 참된 생명을 잃고 육신의 생명을 잠시 누리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비록 육신의 생명이 초기처럼 1000년에 가깝든, 오늘날처럼 100년에 가깝든 육신의 생명은 하늘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땅에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한합니다. 죽음에 굴복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다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이요, 하늘에 속한 생명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의 생명이요 영생입니다. 이 생명은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 있는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되, 바로 이 생명을 복으로 주십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이 놀라운 생명을 주시며, 어떻게 이 생명을 주십니까?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 이 생명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택하신 것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는 것의 결정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택하신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복으로 주십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우리를 자기의 자녀들로 삼는 것을 예정하신 때문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실 것을 예정하셨기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자녀로 삼고자 예정하시고, 택하신 자들은 하나님 앞에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하고자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빛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곧 우리 주 예수님 안에서 거저 주시는 것인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이를 보면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는 예수님 안에서 거저 주시는 은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첫째가 7-10절에 나오는 속량 곧 죄들을 사함 받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받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은 모든 죄들을 사함을 받는 것이 실로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가 만일 하나님께 속량, 곧 죄들의 사함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큰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 반드시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택한 자기 백성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것으로 인해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만 이 예수님을 믿고 이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붙들고 ‘하나님이여, 저는 죄 많은 죄인입니다’고 애통하며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올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속량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속량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속량의 은혜는 단지 우리의 구원만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되면 이루실 구원의 계획안에서 예정된 놀라운 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일, 만유가 다시 하나님의 창조 질서대로 회복되는 일로 완성이 됩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놀라운 만유회복에 서막을 여는 일인 속량을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로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이 은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거저 주시는 은혜의 두 번째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는 자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예정을 입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신나는 일이요, 소망이 넘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 일 역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비록 세상에서는 비록 대단한 가문의 상속자가 아닐지 모르지만,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우리임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시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은 것입니다. 인 치심을 받았다는 말은 도장을 찍었다는 말입니다. 도장을 찍는 것은 고대에 소유권의 표시로 낙인을 찍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치 ‘하나님 것’이라는 도장을 찍듯이,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은 것에 대해, 확인의 의미로 도장을 찍는 절차와 같이 약속하신 성령을 주신 것을 말합니다. 이런 성령을 주신 것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인 우리를 구원하실 때 얻게 될 우리에게 약속하신 기업에 대해 성령님이 보증이 되게 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최후의 구원과 그 때의 상속에 대해 어떤 의심도 없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상에서 보면 오늘 본문은 한 가지 이야기를 줄기차게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찬송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라는 선포를 시작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 찬송하지 않을 수 없고, 찬송 밖에 할 것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의 하신 일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끝내주는지, 대단한 일이며, 신나는 일이며, 기쁜 일이며, 감사한 일인지, 그런 일은 하나님 밖에 하실 수 없는 일인지를 소리 높여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런 일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 것, 우리를 택하시고 하신 일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복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우리를 택하신 것이며, 택하신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 영생을 주신 것임을 보았습니다. 또한 여기에 더하여 택하신 우리에게는 모든 죄를 사함 받은 속량의 은혜, 천국의 상속자가 된 은혜, 우리가 상속한 기업의 보증이 되시는 성령님을 받은 은혜를 더하여 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중에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은 일이 없으며, 찬송 밖에 할 수 없고, 찬송하지 않을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에베소서 말씀 공부를 시작하면서, 먼저 하나님은 내게도 찬송 받으실 아버지이심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사도 바울처럼 찬송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한편으로는 하나님 아버지는 왜 이토록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되 찬송하게 하려 하시는가, 그 근본적인 뜻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남겨둘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후편 말씀에서, 더 나아가 나머지 에베소서 말씀 전체를 통해서 계속 찾아나가며, 참된 의미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성도들이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에베소서 제1강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①찬송 받으실 분 하나님 우리 아버지
말씀 / 에베소서 1:1-23
요절 / 에베소서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And God placed all things under his feet and appointed him to be head over everything for the church. NIV)
신약성경은 크게 나누면 복음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복음서와, 복음전파를 통해 교회가 세워진 후 이런 교회들의 문제를 돕기 위해 쓰인 서신서의 둘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이런 서신서의 하나입니다.
에베소서는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후(A.D) 61년경에 보낸 서신입니다. 에베소는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 하에 있는 속주인 아시아(지금의 터키의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로서, 지중해 세계의 매우 큰 대도시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잠깐 방문한 후(A.D 53), 그 1년 후인 3차 전도여행 때 다시 방문하여 3년 동안 머물며 세운 교회였습니다. 이를 볼 때, 에베소서는 그로부터 불과 4,5년 후에 사도 바울이 보낸 서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의 내용을 보면, 그 사이에 에베소 교회에 무슨 문제가 생겨서 그것을 돕고자 보낸 그런 류의 서신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에베소서는 전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성경일까요? 이를 한 마디로 말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한다면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신비를 말하는 서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비란 단어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진리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에베소서에서 말씀해 주시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겠구나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나름대로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교회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말이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라고 하면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건물’로서의 어떤 교회와 그곳에 다니는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교회에 대해 일부분은 말할지 모르지만, 충분히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말만으로는, 교회가 교회일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성도들이 교회 공동체로서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할지 알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한편으로 우리 시대는 ‘세상을 걱정해야 할 교회가, 세상이 걱정하는 교회’가 되었다는 말이 들려오기도 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가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듣는 일은 시의적절한 필요가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번 에베소서 말씀 공부에 복을 내려 주셔서,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지 잘 배우게 해 주시고, 한 마음 한 뜻으로 그런 교회를 세워나가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에베소서 말씀 공부는 1,2,3장까지는 장으로 구분된 의미를 살려 기초공부는 한 장씩 한 번에 공부하지만, 메시지는 두 번으로 나누어 좀 더 충분히 본문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서신서의 특징 상 본문의 문장과 단어들이 다소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한 번에 살펴볼 수 있는 분량이 많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예 본문을 짧게 잡다보면 부분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고, 전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나눌 말씀도 에베소서 1장 전체를 본문으로 하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라는 제목 안에서, 2주간에 걸쳐 전편과 후편으로 나누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에베소서 1장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2절은 간단한 인사말입니다. 3-14절은 찬송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에게 주신 복 때문입니다. 15-23절은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는 내용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런 1장 말씀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 전편에서 주로 살펴볼 14절까지의 내용인,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복을 주신 것은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후편에서 살펴보게 되겠지만, 이를 통해 그 머리가 그리스도이신 교회,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시고,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이 선포되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1장 전반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에 대해서 들을 때, 우리는 이것이 단지 우리가 얼마나 복 받은 자인가를 말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신령한 모든 복을 주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되게 하고, 그런 교회 공동체로서 세상 속에서 살게 하시려는 것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편지를 보내는 자신이 누구인지 소개하기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란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를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사도가 된 사건은 사도행전 9장과 22장에 나와 있습니다. 바울은 본래 성도들을 핍박하러 다니던 극렬 유대교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그런 이야기를 퍼뜨리는 성도들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이단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런 성도들을 멸하여 없애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시고 그를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예수님께로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 6:44).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을 주라 할 수 없고, 그리스도로 믿게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의 전도를 통해서든지, 또는 성경공부나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지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듣게 되고,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되고,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도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시기 때문에, 복음 전파는 직접 사도들과 바울만으로 끝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보내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사람들이 계속 생기게 됩니다. 이는 우리 중에서도 계속 이루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난주에는 김선림 자매가 자기도 목자가 되어 양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며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역사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지난 주일에 박혁재 목자님은 신년 2강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께서 복음전파의 후속 세대를 세워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로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보면서, 우리까지는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우리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걱정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의 뜻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예수님께로 이끄시고 믿고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 같이, 우리 다음에도 후속 세대를 일으키시고 이렇게 계속 하실 것을 믿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런 후속 세대를 맡겨주실 때,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로 준비되도록 능히 도울 수 있는 준비된 성경선생들이 되고, 목자들이 되고자 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기의 소개를 한 다음에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로 인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성도들에게 항상 필요하고, 그래서 항상 서로 빌어주어야 할 인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우리의 아버지로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 교부에게 하나님에 대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무엇을 하셨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사람에게 ‘창조 전에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셨냐고? 그런 주제넘은 질문을 하는 당신 같은 자들을 위해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고 면박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줄 알을 알면 다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것은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닙니다. 3절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본래부터, 처음부터, 영원부터 영원까지 아버지이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있기 전부터, 창조주요 통치자이기 전부터 아버지로서, 성자 예수님과의 사랑 속에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는 어떤 존재입니까? 아버지는 생명을 주는 존재, 자녀를 낳고, 사랑으로 돌보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은혜와 평강임을 아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강을 주시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넘치도록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알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구하고, 서로를 위해 빌어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인사말을 한 후에, 3-14절까지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가 다소 그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원문의 한 문장이 매우 긴 문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번역을 할 때, 무엇이 말하고자 한 주부인지, 무엇이 그 말을 수식하거나 설명하고자 해서 한 말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1장의 경우도, 원문 상으로는 단지 세 문장입니다. 1-2절이 한 문장이고, 3-14절이 한 문장, 15-23절이 한 문장입니다. 그래서 이런 긴 문장이 많은 관계절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3-14절에서 말하고 있는 요지는 무엇일까요?
전체적인 요지는 ‘찬송 받으실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한 마디로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복은 구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을 것을 예정하심으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택하신 목적은 두 가지라고 합니다. 한 가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하시기 위함이고,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거저 주시는 바인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6).
그런 다음, 7-14절까지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시는 바인 그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 곧 죄들의 사함을 받은 것(7-10), 둘째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 곧 상속자가 된 것(11-12), 셋째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인 치심 곧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의 보증이 되시는 성령님을 받은 것입니다(13-14)
이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처럼 복된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9-11장 말씀을 공부할 때,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택하심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임을 배운 바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하나님의 택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임을 배운 바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4-14절은 바로 하나님의 택하심이 얼마나 큰 복을 받은 것이며,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것인지를 설명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것을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복이며, 그것은 하늘에 속한, 참되고 영원한 복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성경에서 복이 처음 나오는 곳은 창세기 1:28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인 복, 하늘에 속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때의 복은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데 필요한 모든 유익한 능력을 뜻했습니다. 그것의 가장 결정적인 내용은 생명의 능력입니다. 감히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추가 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늘날의 배터리와 맥이 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아무리 아이폰6이나, 갤럭시6 또는 갤럭시 노트5의 최신 첨단 폰이라도 배터리가 있어야 합니다. 배터리는 하루살이와 같은 한시적인 것일지라도 일종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도 생명이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의 참된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이요, 하늘에 속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범죄 함으로 이런 참된 생명을 잃고 육신의 생명을 잠시 누리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비록 육신의 생명이 초기처럼 1000년에 가깝든, 오늘날처럼 100년에 가깝든 육신의 생명은 하늘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땅에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한합니다. 죽음에 굴복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다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이요, 하늘에 속한 생명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의 생명이요 영생입니다. 이 생명은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 있는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되, 바로 이 생명을 복으로 주십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이 놀라운 생명을 주시며, 어떻게 이 생명을 주십니까?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 이 생명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택하신 것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는 것의 결정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택하신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복으로 주십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우리를 자기의 자녀들로 삼는 것을 예정하신 때문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실 것을 예정하셨기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자녀로 삼고자 예정하시고, 택하신 자들은 하나님 앞에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하고자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빛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곧 우리 주 예수님 안에서 거저 주시는 것인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이를 보면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는 예수님 안에서 거저 주시는 은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첫째가 7-10절에 나오는 속량 곧 죄들을 사함 받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받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은 모든 죄들을 사함을 받는 것이 실로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가 만일 하나님께 속량, 곧 죄들의 사함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큰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 반드시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택한 자기 백성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것으로 인해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만 이 예수님을 믿고 이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붙들고 ‘하나님이여, 저는 죄 많은 죄인입니다’고 애통하며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올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속량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속량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속량의 은혜는 단지 우리의 구원만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되면 이루실 구원의 계획안에서 예정된 놀라운 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일, 만유가 다시 하나님의 창조 질서대로 회복되는 일로 완성이 됩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놀라운 만유회복에 서막을 여는 일인 속량을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로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이 은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거저 주시는 은혜의 두 번째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는 자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예정을 입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신나는 일이요, 소망이 넘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 일 역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비록 세상에서는 비록 대단한 가문의 상속자가 아닐지 모르지만,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우리임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시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은 것입니다. 인 치심을 받았다는 말은 도장을 찍었다는 말입니다. 도장을 찍는 것은 고대에 소유권의 표시로 낙인을 찍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치 ‘하나님 것’이라는 도장을 찍듯이,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은 것에 대해, 확인의 의미로 도장을 찍는 절차와 같이 약속하신 성령을 주신 것을 말합니다. 이런 성령을 주신 것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인 우리를 구원하실 때 얻게 될 우리에게 약속하신 기업에 대해 성령님이 보증이 되게 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최후의 구원과 그 때의 상속에 대해 어떤 의심도 없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상에서 보면 오늘 본문은 한 가지 이야기를 줄기차게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찬송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라는 선포를 시작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 찬송하지 않을 수 없고, 찬송 밖에 할 것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의 하신 일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끝내주는지, 대단한 일이며, 신나는 일이며, 기쁜 일이며, 감사한 일인지, 그런 일은 하나님 밖에 하실 수 없는 일인지를 소리 높여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런 일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 것, 우리를 택하시고 하신 일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복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우리를 택하신 것이며, 택하신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 영생을 주신 것임을 보았습니다. 또한 여기에 더하여 택하신 우리에게는 모든 죄를 사함 받은 속량의 은혜, 천국의 상속자가 된 은혜, 우리가 상속한 기업의 보증이 되시는 성령님을 받은 은혜를 더하여 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중에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은 일이 없으며, 찬송 밖에 할 수 없고, 찬송하지 않을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에베소서 말씀 공부를 시작하면서, 먼저 하나님은 내게도 찬송 받으실 아버지이심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사도 바울처럼 찬송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한편으로는 하나님 아버지는 왜 이토록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되 찬송하게 하려 하시는가, 그 근본적인 뜻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남겨둘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후편 말씀에서, 더 나아가 나머지 에베소서 말씀 전체를 통해서 계속 찾아나가며, 참된 의미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성도들이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